늦었거나 늙었거나 늦었거나 늙었거나 황희순 수많은 날들 빗물처럼 흘려보내고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기에 늦었거나 늙었거나 내가 나를 잊은 건 아닐까 너무 오래되어 AS 안 되는 건 아닐까 고물 삽니다 못쓰는 재봉틀 팔아요…… 고장난 콤퓨 터 테레비…… 고장난…… 못쓰는 못쓰는…… 남이 보거나 말.. 詩쓰기 2013.01.17
빈칸 빈칸 황희순 마시다 남긴 소주를 가져와 민들레꽃 몇 송이 담가두었다 오래된 꽃술은 밤에만 피어난다 버려도 그만인 그것은 각각의 몫을 뺀 나머지다 여직 살아남은 나도, 더 이상 셈이 불가능한 나머지다 자식몫 아내몫 어미몫을 뺀, 있으나마나, 텅텅 빈 詩쓰기 2012.12.21
비 오는 밤의 토크 비 오는 밤의 토크 황희순 세상엿같어울구싶다야!희순아……엉?죽구싶어?……우울구싶다구우퍼엉펑……뭐어?또옹통?……에이시벌!어떤개애섀키가오줌갈기고갔네내영역인데……벼엉신 책을 덮는다는 게 전화를 툭 끊고 말았다. 혀 꼬인 말들이 고물고물 방바닥을 기어다닌다. 귓구멍.. 詩쓰기 2012.12.05
사바아사나 사바아사나 황희순 의식은 깨워둔 채 온몸을 바닥에 모두 내려놓습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멈췄다 기일게 내쉽니다. 주검처럼 누워 깜빡 쉬는 사이, 들숨과 날숨 너머 棺이 삐꺽 열립니다. 돌아누울 여백조차 없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텅 비어있습니다. 뼈에 박힌 못을 하나씩 뽑아.. 詩쓰기 2012.11.07
길의 배경 길의 배경 황희순 막다른 골목에 서있던 그 봄, 발길 닿는 곳마다 경로이탈 경고음이 울렸다. 더 이상 디딜 곳 없어 발을 잘라 몸속 깊이 숨겼다. 발을 숨긴 몸에 여러 갈래 길이 생겼다. 길은 점점 자라 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위태로운 바람이 여름을 가을을 겨울을 아슬아슬 지나갔다.. 詩쓰기 2012.11.07
여기가 어디일까요 여기가 어디일까요 황희순 너고생들식길라고미리간다/차가지고단이는애들놀내장게전아하지마라/서라비돈심만언잇으니생일날애델리고마신는것사머거라/내가잘못한것용서해라/너는너의남편이잘하니나나가면방에서한번궁그러라* 글을 써본 적 없는 여든다섯 엄마가 며느리에게 삐뚤.. 詩쓰기 2012.06.14
갇힌 기억들 갇힌 기억들 황희순 철없이 아이를 기르던, 아이를 기르다 몸을 잠근, 몸 잠근 열쇠를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 하수구만 뒤지던, 매일 밤 겨드랑이에 날개를 그렸다 지우던, 폭식과 거식을 반복하던, 막차 놓치는 꿈만 꾸던, 울음과 웃음을 분간 못 하던, 슬픔만 파먹던, 죽을힘 다해 찾은 .. 詩쓰기 2012.05.29
미끼 미끼 황희순 처음 만난 사람이 새끼손가락을 떼어갔다 다음 사람이 귀를 떼어갔다 다음은 입을 떼어갔다 눈을 떼어갔다 코를 떼어갔다 다음은 팔을 다리를 떼어갔다 잔머리 굴린다며 머리를 떼어갔다 그 다음 사람이 달걀귀신처럼 둥그러진 여자를 버렸다 버려진 여자는 아무데나 굴러.. 詩쓰기 2011.09.12
숨바꼭질 숨바꼭질 황희순 커튼 사이로 칼날 같은 햇살이 들어온다 세상과 통하는 길이 저랬다, 좁은 그 길을 여닫으며 칼날 같은 말과 눈빛만 오래 주고받았다 꼭꼭 커튼을 여미지만 여민 틈새로 더욱더 예리한 빛이 스며든다 칼이 들어와도 다시는 커튼을 열지 않을 거야 살을 파고드는 빛은 들.. 詩쓰기 2011.09.12
명자꽃 피다 명자꽃 피다 황희순 이끼 속에 빌붙어 있던 먼지보다 작은 주머니(알)들이 수수만 년 쫓고 쫓기다 보니 어떤 건 쥐가 되고 독수리가 되고 어떤 건 멧돼지가 되고 노름꾼이 되고 어떤 건 미어캣이 되고 시인이 되었다 그들의 눈이나 날개나 꼬리나 발톱은 다 고통을 건너기 위해 생긴 뿔이.. 詩쓰기 2011.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