幻, 질긴 幻, 질긴 황희순 파리 한 마리 들어와 더운 한낮을 약 올린다. 창을 열어둔 채 잠시 잊기로 한다. 나갔으려니 생각한 이놈이 능청맞게 파리채에 죽은 듯 붙어 있다. 노려보다가 헛손질을 했다. 그러기를 얼마, 그는 그렇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위기의 순간에 나보다 더 화를 내거나 웃을.. 詩쓰기 2009.11.15
도피안到彼岸 도피안到彼岸 황희순 한 성직자가 2012년 대혼란이 올 거라며 높고 깊은 산골짝에 별장을 짓는다고 했다. 금성보다 큰 혜성이 다가와 지축을 돌려놓고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지구의 반은 쓸어갈 거라 했다. 지구 종말이 온다 해도 우주를 말하자면 인간은 티끌만도 못할 터. 하지만 애인아,.. 詩쓰기 2009.09.24
연리지連理枝가 있었다 連理枝가 있었다 황희순 몸이 딱 맞는 사내를 만난 적 있다. 그녀는 凹凸 같은 서로의 몸이 신기해 구석구석 들여다보며 찍어먹어 보기도 했다. 틈만 나면 그를 짚고 머리꼭대기까지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며 혼자 키들거렸다. 가끔 어긋나 비어져 나오는 살을 감쪽같이 도려내는 그는 .. 詩쓰기 2009.09.24
화려한 재회 화려한 재회 __학공치 낚기 황희순 비껴가는 너를 낚기는 싫었다. 지느러미도 아가미도 아닌 학같이 어여쁜 고 붉은 입술을 원했던 거다. 세상사 언제 뜻대로 된 적 있었나. 너는 옆구리 꿰어 내게 왔다. 파들거리는 몸통을 움켜잡았다. 하초로 전해지는 탱탱한 감각이 시장기를 부추긴다... 詩쓰기 2009.09.24
개’불 맛 ‘개’불 맛 황희순 개불을 샀다. 말지렁이 같기도 하고 개 거시기 같기도 한 그것을 도마에 올려놓았다. 개살구 개모밀 개망초 개여뀌 개불알꽃……. 개불알꽃말고는 개[犬]가 아니라지만 ‘개’자 붙은 것들은 다 개 같다. 머리도 꼬리도 구분 없이 꿈틀대는 이놈을 어떻게 단박에 제압.. 詩쓰기 2009.07.06
골동품 골동품 황희순 반백 년 함께 산 어머니의 재봉틀이 문밖에 놓여 있다. 야야, 저거 버려야 쓰겄다. 다리 심 빠져 인제 암것두 못햐. 바람 나 찢어질 대로 찢어진 마흔 살 아버지를 꿰매고, 외아들 역성들기에 신바람 난 할머니를 꿰매고, 엉킨 북실 풀어 다섯 남매 꿰매던 시간을 이제 버리려 하신다. 손.. 詩쓰기 2009.05.12
부음을 듣다 부음을 듣다 황희순 날개도 없으면서 날아오르려 애쓰던 육신이 있었다 욕심만 홀딱홀딱 집어 삼키며 배설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육신을 부러워했다 작은 눈은 세상을 조롱하는 듯했고 검지로 귓구멍을 항상 틀어막고 다녔다 손가락만 활짝 펼쳐도 구경꾼이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모여들었다 한 뼘.. 詩쓰기 2009.05.11
나는 이제 품절이다 나는 이제 품절이다 __<부위별로 팔아요> 후렴 황희순 한 고객이 문자메시지로 가장 자신 있는 부위 팔라 했다. 또 한 고객이 전화로 손을 끼워 파는 부위 살 테니 얼마면 되느냐 물었다. 또 한 고객이 이메일로 맛보고 사도 되느냐 물었다. 한 고객을 또 만났다. 그는 카드로 결재하자,.. 詩쓰기 2009.02.20
달팽이놀이 달팽이놀이 황희순 달 밝은 밤을 돌아봐, 빙글빙글 어지러운 세상을 즐겨봐, 고장난 그대 귓속 달팽이관은 빼버리고 진짜 달팽이를 끼우는 거야, 균형을 잘 잡고 나를 따라 돌아봐, 점점 크게 점점 작게 달팽이집을 지어봐, 어지러운 저 너머를 두려워 마, 껍질 벗어던진 민달팽이처럼 미.. 詩쓰기 2009.02.20
청개구리經 청개구리經 황희순 나 울어도 부처님 웃으시네 울어라 울어라 하며 웃으시네 차마 아프다는 말 못하네 말 끝난 자리가 반야바라밀이라 말이 말고삐 끌고 다니느니 말 많은 세상을 말하지도 말라 하시네 내 안에 우물 하나 자라네 그 우물 출렁거리는 날 부처님도 함께 출렁거리시네 창문 꽁꽁 닫고 듣.. 詩쓰기 2009.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