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쓰기

청개구리經

섬지기__황희순 2009. 1. 18. 11:45

 

 

청개구리經

황희순

 

 

 

나 울어도 부처님 웃으시네

울어라 울어라 하며 웃으시네

차마 아프다는 말 못하네


말 끝난 자리가 반야바라밀이라

말이 말고삐 끌고 다니느니

말 많은 세상을 말하지도 말라 하시네


내 안에 우물 하나 자라네

그 우물 출렁거리는 날

부처님도 함께 출렁거리시네


창문 꽁꽁 닫고 듣는 빗소리

세상을 그렇게 듣는 게 아니야

부처님 내 눈 활짝 열어 제치시네


눈만 뜨면 웃으시는 부처님

오늘은 자꾸 주무시네

심심해진 나 또 한눈을 파네


고개 들어 달 보라 하시네

달에 비친 세상 보라 하시네

무엇이든 비춰보아야 아름답다 하시네


더는 갈 수 없는 길 끝 낭떠러지

한 발자국 더 내디뎌라 떼미시네

그래야만 껍질 벗을 수 있다 하시네


깊은 밤 별똥별을 보았네

하늘에 별 있듯 땅엔 사람 있느니

모두 나름대로 반짝이다 사라지는 별이라 하시네


나의 손이며 눈이며 귀인 부처님

따라만 오라 하시네

뒤틀린 길도 함께라면 건널 수 있다 하시네


사랑은 시작도 말라 하셨으나, 부처님

초가을 선혈 낭자한 꽃을 보았네

기어이 꽃을 꽃이라 부르고야 말았네


은행나무에 기대신 부처님

나뭇잎에 반짝 웃음이 열리네

물무늬처럼 번지네, 나도 따라 번지네


길 잃은 왕개미 포도鋪道 위를 기어가네

나란히 나도 가네

부처님 건들건들 뒤따라오시네


뛰어가는 그를 쫓다 쨍그렁, 넘어지고 말았네

깨진 나를 주워들고 부처님 거꾸로 가시네

길 아닌 길도 때로는 길이 된다 하시네


세상이 온통 풀밭이네 부처님 밟고 지나간 자리

간신히 몸 가눈 시든 풀 한 포기

오늘은 풀밭에 비 내리네 온종일 그치지 않네


소주 한잔 마시고 입천장 쩍쩍 달라붙는 청태靑苔

뜯어먹다가, 내 살 뜯어먹다가

천 년 전 내가 여기 또 이렇게 앉아있네


허공에 매달린 자벌레 온몸으로 쓰네

∽?¿詩?¿시시?¿시시시?¿씨x?¿!

부처님 뒤통수 한대 맞은 거라


나는 모르네 부처님 뒤통수 누가 때렸는지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개가 사람보다 비싼 개 같은 세상에


쐐기벌레 몸부림치며 개미에게 끌려가네

세상엔 거울 아닌 게 없느니

끌려가는 너를 보라 하시네


꽃 한 송이 품에 안고 안절부절 못하네

세상을 싸운 사람 대하듯 하라 하셨으나 부처님

어쩌면 좋아, 그 꽃 내 가슴에 뿌리를 내렸으니


콩꺼풀 씌우면 콩만 보이고

부처님 품에 안기면 부처님만 보인다네

나는 나 뒤집어쓰고 꼬깃꼬깃한 내 안만 들여다보고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라 하시네

앞에도 뒤가 있고 뒤에도 앞이 있네

땅 짚고 하늘을 걸어가네, 나 작은 안에 갇혔네


옴츠린 만큼 멀리 뛸 수 있다네

팔 벌린 만큼 하늘도 안을 수 있다네

사랑아 얼마나 퍼주어야 사랑 한 모금 주겠느냐


詩는 詩人의 똥, 똥 중에 물찌똥이네

詩人은 잡식동물이며 영원한 소화불량 환자네

부처님도 똥이네


방안 깊숙이 부처님을 끌어들였네

구석구석 살피시네 어둔 방이 환해지네

내 몸이 달뜨네


새 옷을 입어도 낡은 모습이네

갈아입을 옷 보이지 않네, 찾을 수 없네

부처님 꽁꽁 숨겨놓으셨네


길눈 어두운 나 종종 길 잃고 헤매네

살던 둥지 찾아가는 새만도 못 하네

묻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은 저승밖에 없느니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살 수 없네

‘없다 없다’는 말씀 이제 믿을 수 없네

인연에 끄달리는 쌈판 같은 生 어찌 없다 하시는가


부처님 팔에 돋아난 나 한잎 이파리네

그의 손길 닿는 대로 웃다가 울다가

파란 잎이다가 빨간 잎이다가 누런 잎이다가


사방팔방 숨기고 속이는 캄캄한 세상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벽은 이미 벽이 아니라네

부처님 배꼽은 한 개일까 두 개일까


뭉텅 잘려나간 山, 속에 바위부처 계시네

부처님 반으로 자르면 경전 들었을라나

나 반으로 자르면 똥만 잔뜩 들어있을 터


빗물에 떠내려가는 부처님을 건졌네

건져놓고 보니 한줌 흙이네

일체유위一切有爲가 다 꿈이거니


허깨비 같은 이 몸을 나라고 말하네

본래 없는 마음을 자꾸 내 마음이라 말하네

부처님 말씀 거역한 죄 사람을 사랑한 죄


꽃은 반만 피었을 때 아름답다 하였느니

초여름 활짝 핀 코스모스처럼

내 가슴에 뿌리내린 꽃 활짝 피어버렸네


생명 있는 것 한 번 죽으면 다시 오지 않네

열번 죽었다 열두번 살아나는 모진 맘은 무엇인가

시끄런 그것이 진창도 풍덩풍덩 이 몸 끌고 다니네


울고 싶을 때마다 부처님을 한입씩 베어 먹었네

부처님도 나를 조금씩 베어 먹었다네

베인 그 자리 새살이 돋고 또 돋고


서양란 가지에 핀 꽃 두 달이 지나도 지지 않네

죽어서도 죽지 않는 핏발 선 주검이네

몇 生이 뜬눈으로 흘러가네


심술 난 아이처럼 하루를 빈둥거리다가

화분에 심어놓은 매운 고추도 따먹다가

부처님 고추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림도 그리다가


나를 찾아 빙글빙글 돌다 훌러덩 넘어졌네

빙빙 도는 사바 손바닥에 올려놓으시고

부처님 끄떡도 않으시네


대웅전에 앉아만 계신 부처님 엉덩이 곰팡이 나겠네

거짓말을 하도 해서 내 엉덩이는 뿔이 났다네, 하여

앉지도 못하고 네발짐승처럼 세상을 서성대고 있다네


하루살이 한 마리 형광등 주변을 날아다니네

하루가 전부인 목숨, 하루가 다 갔는데

시간이 없는데, 살충제를 뿌리려다 그만두었네


부처님, 삐걱거리는 내 무릎 베고 잠드셨네

잠결에 웃으시네, 깨달은 이는 꿈도 다스린다는데

미련한 나는 전생이 개였는지 맨날 개꿈만 꾸고


하늘에 우뚝 꽂혀있던 소나무가 쓰러졌네

쓰러진 나무 받치고 선 상수리나무 작은 어깨

山이 기우네, 부처님 발걸음도 비틀비틀


상가喪家 울음소리가 웃음소리로 들리네

웃음보따리가 터져 웃다가 그냥 막 울어버린 적 있지

찰나인 세상을 웃다가 울다가, 울다가 웃다가


동학사 계곡 멍석만한 바위 위 가부좌한 청개구리

그 곁에 고요히 앉았네, 어디서 보았더라

아, 부처님


생각 없이 길을 가라 하셨으나

길 없는 길 위에 그림을 그리네, 발자국 뗄 때마다

나도 그리고 또 그를 수없이 그렸다 지우네


저절로 돋았다 지는 들풀

저절로 돋았다 지는 사람

저절로 돋았다 지는 부처님


감나무가 죽은 제 가지를 뚝 잘라내네

온몸으로 밀어냈으리, 새싹도 그 힘으로 틔웠으리

만물지령萬物之靈인 나는 썩은 마음 한쪽 떼어내지 못하고


뭐하시나 부처님, 아직 짝 못 찾은 매미 있네

처서가 지났는데 밤 깊도록 우네, 벌서듯 나도

사내를 생각한 적 있지, 사랑에 빠진 적 있지


비 온 후 개인 하늘

꾹 찌르면 까르르 웃음이 쏟아질 듯하네

하해河海 같은 부처님 가슴 꾹 찌르면 쪽빛 사리 나올까?


내 몸 뚫고 나가야 보이는 부처님

부처님 속에 몸 밀어 넣고서야 보이는 나

서로를 아프게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사랑


밖으로 눈 돌리면 돌부리 천지네

마음 내지 말고 네 안 들여다보라 하시네

돌부리도 내가 그린 그림이거니


山에 들면 나는 한 마리 쓸쓸한 벌레

떡갈잎이 먹음직한데 한입 베어 먹지 못하는

송충이만도 못한 몸집 큰 벌레


나도 허구虛構, 너도 虛構, 부처님도 虛構

모두 깊은 수렁에 빠져있네

빠진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 건너가네


바람이 창문을 흔드네

심심해서 내 안에 깃든 부처님 슬쩍 건드려보네

부처님은 누구랑 노시나, 누가 있어 집적대며 보채실까


왕소금 한개 집어먹고 소주 한잔 마시고

부처님 한번 만져보고 소주 한잔 마시고

상한 마음 한번 찍어먹고 소주 한잔 또 마시고


금강경 펼쳐놓고 잠이 들었네

금강金剛이 폭신하네

부처님 팔베개는 아마 이럴지도 몰라


몸이 열려야 마음도 열린다네

손으로 열어야 열리는 몸

몸으로 열어야 열리는 마음


사랑은 손끝에서 온다네

만지지 않고 오는 사랑은 없다네

만질 수 없는 부처님 사랑은 가짜라네


선선한 밤 따뜻한 살이 그립네

형상 있는 것 모두 허상이라 하셨으나

허상을 그리워하는 허망한 이 몸


쓰러져서도 사는 상수리나무 푸른 잎이 빛나네

글로 쓸 수 없는 페이지, 성스런 경전

빛으로 몸 바꾼 고통을 읽네


법당에 앉아계신 부처님 일으켜 세워볼까?

하여 발 걸어볼까? 발 걸면 엎어지실까?

엎어지신 부처님 껴안고 한번 놀아나볼까?


부처님 손바닥 위에 뿌리내린 오동나무

그 잎새에 길이 있네, 그 길 따라 나 지금

수행 중이네, 지렁이 자벌레 박새 함께 가네


깊은 가을인데 진달래 한 송이 피었네

내 시절도 가을인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딱 한 사람만 피울 수는 없을까?


詩人은 이슬 먹고 구름똥 싼다네*

누에는 뽕잎 먹고 비단실 만들지

부처님 온갖 공양 다 자시고 무슨 똥 누시나

                         *박희진 시인의 사행시 중에서


노란 은행잎이 한꺼번에 떨어지네

무얼까, 입 모은 저들의 法文

쑥덕쑥덕 덜미 휘어잡는 비밀 이야기


바삐 걷다 보았네, 콘크리트 구석에 웅크린

부처님 후― 불면 흔적 없이 사라질

한 점, 나


입동이 지났는데, 손이 시린데

마른 풀숲 휘청휘청 날아다니는 흰나비

게으른 내게 주신 부처님의 화두 한 토막


한손에 나를 또 한손에 그를 들고 부처님 따라가네

손에 든 것 다 버려라 버려라 하시네

뒤돌아보니 텅 비었네, 부처님 모처럼 웃으시네


진종일 내릴 것 같던 눈발이 그쳤네

쉬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은 없느니

호흡지간呼吸之間이 너무 길었네


내 생각에 모래가 섞였네

길을 내면 흩어지고 山을 만들면 무너지네

生은 시시각각 길이었다가 山이었다가 모래였다가


배롱나무에 베롱꽃 피었네

메롱~메롱~하다가 간질밥을 먹였네

흐늘흐늘 능청맞게 웃네, 따라 웃고 말았네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고 사람은 죽어 하늘에 떨어지네

하늘에 떨어지는 사람은 누가 받나

부처님 손바닥은 너무나 작네


남간정사 까치 세 마리 머리 맞대고 쑥덕공론 중이네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네, 그래그래

끄덕끄덕, 나도 한자리 끼어드네


도공스님 曰, 늙지도 젊지도 않은 호박은 못 먹는다 하시네

쉬어버린 쉰 살, 쉰 이 몸은 어쩌면 좋아

주름투성이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숨바꼭질이나 하면서


다람쥐가 제 머리통만한 밤알 물고 나뭇가지를 건너네

떨어뜨렸다가 줍기를 몇 번, 드디어 바위 밑으로 드네

너나 나나 목숨 걸고 가는 이 길, 부처님 구경만 하시네


논길을 걷다가 벼 모가지를 무심히 똑 잘랐네

여물지도 못하고 고개 숙인 쭉정이, 내 모가지

나는 있는 건가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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