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을 박다
황희순
모처럼 찾아온 사랑이 몸에 박힌 못을 한 개씩 빼주었다. 생각하기 싫은 것은 버리고 아픈 몇 개는 서랍 깊이 넣어두었다. 살점이던 못을 꺼내 가벼워진 나를 이따금 걸어보기도 했다. 손에 맞게 사랑은 잘 자랐다. 싱거워지면 간을 맞춰가며 애지중지 갖고 놀았다. 움푹 파였던 상처에 달콤한 꿈이 고였다. 꿈이 꽃으로 피어났다. 꽃이 지기도 전에 못을 빼주던 사랑이 어느 날 못이 되었다. 살을 파고드는 못을 뼛속 깊이 박았다. 아무도 뺄 수 없게, 탕·탕·탕. 서랍에 넣어두었던 못도 꺼내 꿈이 고였던 자리에 박았다. 가볍던 몸이 다시 무거워졌다. 이제 되었다. 아플 수 있겠다.
___<정신과표현, 2008. 11,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