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강빈 시비 건립기 황희순(시인) 프롤로그 오래전 일이다. 나는 정말 첩첩산중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헤매는 중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잠잘 곳을 찾다 보니 선생님 댁 대문 앞에 내가 서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이사하시어 남의 집이 되어버린 ‘대전 서구 도마동 126-2’, 옆집 담 너머 지붕까지 덮은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가로등 불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조금 망설이다 초인종을 눌렀다. 놀라신 선생님과 사모님은 서재에 이불을 깔아주셨고, 한 세 시간쯤 자고 일어나 살그머니 나왔다. 나오는 길에 흐트러져 있는 현관 신발들을 정리하고 현관문이 열리지 않도록 벽돌로 눌러놓았다. 새벽 5시에 궁금하여 나오신 선생님은, 텅 빈 방과 가지런한 현관 신발들을 보고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