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쓰기 126

어리석은 멜로

어리석은 멜로황희순기억이 우릴 지켜줄 거야행복을 지나치게 믿어선 안 돼서로를 모를 때 하는 질문은끔직한 무기가 될 수 있지다가올 일은 서서 기다리면 돼본능이 시키는 대로 항상 그래 왔어남자와 여자에게 벌어질 일은 결국불행해지는 것, 멋지지 않아?우연은 자주 찾아오지 않아살면서 만나는 많은 일들은 계속우릴 따라다닐 거야익숙한 저 중얼거림들엿들은 말, 실수로 뱉은 말까지도입술에 남아있을 거야불쾌한 웃음소리와 우릴 스친 손길도피부에 남아있을 거야우리가 만난 사람들이 전부기억 속에 살아있고게임이 끝난 후에도막무가내 매달려 있겠지이건 너무 어려워늙기를 기다리기엔 너무 지겹다고차라리 다시 죽는 게 낫겠어전부 다 너무 어려워*위 시는 영화 대사 재구성함.     기억이 우릴 지켜줄 거야행복을 지나치게 믿어선 안 돼..

詩쓰기 2025.02.13

에필로그

에필로그황희순너무 혼란스러워하지 마요오해받길 바라지 않잖아요바람은 술과 같은 거라서적당히 마시면 심장에 좋죠겨우 3일, 불장난한 거예요훌륭한 선수는 생각을 안 한대요대체로 사기꾼은 자신을 감춘다죠어느 것도 망치고 싶지 않아요백조이면서 오리처럼 살거나오리이면서 백조처럼 살거나도덕성이 결핍되었다는 건 아니에요행복과 모험은 같은 혈통이죠진심으로 모험을 원한다면기회를 꽉 잡아야 해요다시 시작이에요시작은 언제나 함정을 감추고 있어요기다리는 것도 꿈의 일부꿈이 어긋나더라도쿨하게 돌아서기, 그리고잊기*위 시는 영화 대사 재구성함.

詩쓰기 2025.02.13

환상통

환상통 황희순 지난봄 거울 속으로 저승 가는 통로가 생겼다. 현관을 잠그려다 말고 거울을 들여다보는 여자, 화마에 휩쓸려 간 남자를 이야기하며 거울을 밀고 들어간다. 저승에 한 발 이승에 한 발, 그녀의 봄이 꿈꾸고 있다. 꿈을 끝내야 계절이 지나간다. 잊히지 않는다고 조바심 낼 일 아니다. 가만히 살아만 있어도 기억은 쥐도 새도 모르게 흘러간다. 사라진 사람의 기억은 어디에 고일까. 모든 기억이 고인 곳은 아마도 생지옥일 거야. 기억이 흘러간 방향으로 그녀가 총총 사라진다. __ 2024. 봄

詩쓰기 2024.03.30

망설이는 바닥

망설이는 바닥 황희순 그 구렁은 바닥이 없어요 아무리 들여다봐도 보이지 않아요 계곡 끄트머리에서 울던 산개구리가 발소리에 놀라 폴짝 뛰었어요 말릴 새도 없이 구렁으로 사라졌어요 솔부엉이가 굼틀굼틀 일어서고 숲속 나무들이 일몰을 사이에 두고 아우성칠 때였어요 깊은 그곳에는 누가 살까요 산개구리를 보려고 아등바등 목을 길게 뺐어요 솔부엉이 같기도 하고 개구리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한 흐느낌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어요 세상 울음들은 대부분 왜 반음정인지 왜 따라 울게 하는 건지 알 수 없어요 어떤 손이 있어 산개구리를 사뿐 받았을까요 무사할까요 누구 사다리 없나요 망설일 시간 없어요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 봐야 해요 나도 같이 울어야겠어요 난파당한 4월이 몰려오고 있어요 __ 2023. 여름.

詩쓰기 2023.06.17

고요의 불순물

고요의 불순물 황희순 울음과 노래를 분간할 수 없던 그때, 애매미는 까르르까르르 웃고 참매미는 그래도 참아라참아 고함 지르고 나흘째 우화 삼매에 빠져 꼼짝 않는 매미 유충의 툭 불거진 눈 들여다보다가 폭발한 나를 나는 단풍나무 밑에 파묻어버리고 굼벵이로 살기 위해 애매미는 온종일 웃고 매미로 살기 위해 굼벵이는 여름을 또 견디고 웃는 애매미가 궁금한 직박구리는 그를 콕콕 찍어보고 참아라 고함 지르는 참매미를 참지 못하고 물까치는 날름 물어가고 흰나비는 장다리꽃에 질질 끌려가고 참새 따라 날고 싶은 개는 꿍얼꿍얼 욕이나 해대고 단풍나무는 누군가에게 밑동을 베이고 여름내 바장이던 나는 한 달 전 파묻은 나를 찾아 캄캄한 고요를 뒤적이고 뒤적일수록 고요는 첩첩 쌓이고 나는 나에게서 조금씩 멀어져가고 __ 20..

詩쓰기 2023.06.17

슬픔강박증

슬픔강박증 황희순 목구멍에 매달려 살을 파먹던 그것, 그것을 뱉으려다 모가지를 잘라 버린 적 있다. 하여 이 머리는 새로 돋은 거라 우겼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들앉은 그것은 아마도 살아있는 돌이거나 대못이었을 거다. 움푹 파인 그곳에 아직도 세포가 남아 숨이 닿으면 덜그럭거린다. 개미야 모기야 초파리야, 여전히 어둠을 뭉쳐 그러안고 산다 해도, 바닥 없는 벼랑을 건너는 중이라 해도, 그래도 그래도 우리 서로 가슴은 절대 들여다보지 말자. 안부를 묻지도 부고도 하지 말자. 한 오백 년 후쯤 우리은하 끄트머리 어디, 눈물 한점 반짝 떴다 사라지겠지. 그제야 환한 저녁 벼랑 없는 바닥 만날 수 있겠지. __ 2023. 봄.

詩쓰기 2023.03.21

가끔 흐림

가끔 흐림 황희순 그날 이후, 낮은 길고 거울은 조금씩 낡아가고 네가 사라진 곳으로만 바람이 분다, 그곳으로 봄이 가고 또 가고 라일락꽃 피면 가슴을 뚫고 비어져 나오는 심장, 꾹꾹 눌러도 비죽비죽 비어져 나오고 또 나오고 잊으면 안 되는 너를 때때로 잊고도 사는 나의 정체가 미심쩍어 기억 한 모퉁이 뭉텅 베어 들여다보니, 사이사이 노랑나비였다가 고추잠자리였다가 나비였던 나를 잠자리였던 나를 어미였던 나를 덜컥 늙어버린 나를 네가, 알아볼 수 있을까 너 있는 곳은 얼마나 가까운 거니 __ 2023. 봄

詩쓰기 2023.03.21

그림자놀이

그림자놀이 황희순 쥐로 살거나 개미로 살거나 뭐가 다르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의심하며 사람 아니면 어쩌나 가슴을 쓸어내린 적 있지 그런 때도 있었어 내 속에 들어앉은 나를 오래 모른척했지 내 눈을 봐, 뭐가 보이니 혹시 벽돌에 눌린 뱀? 그랬지, 한때 사람 아닌 적 있었지 내가 나를 꾸욱 밟아 죽인 적 있지 그래서 말인데, 솔직히 말해봐 나는 어디에 쓰는 도구니 나는 왜 나를 지울 수 없는 거니 __ 2022. 하반기

詩쓰기 2023.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