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근황 황희순 티브이 화면 가득 촛불이 일렁여요 그가 화면에 비친 아들 손을 잡으려 팔을 길게 뻗어요 촛불 든 허수가 아비를 불러요 아버지이~ 한쪽으로만 열린 그들 귀는 목청을 돋워도 들리지 않아요 서로서로 만들어놓은 상하좌우 벽을 누구도 넘을 수 없어요 벽은 나날이 견고해지고 발자국마다 노여움이 고여 넘치려 해요 한 무리는 뒷걸음하고 한 무리는 게걸음하고 또 한 무리는 뛰어가며 정답이라고 우겨요 어깨 겯고 나란히 걷던 시절이 있긴 있었던가요 가상도 현실도 아닌 곳에서 쪼글쪼글 홀로 시들어가는 베이비부머 J, 당당하던 걸음걸음은 누가 비틀어놓았을까요 한때 사람속(屬)이었던 그의 꼿꼿한 뼈는 누가 다 뽑아갔을까요 ___ 2022. 하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