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쓰기

파편들

섬지기__황희순 2020. 7. 10. 19:11

  파편들 

 

  황희순

 

 

 

  주변을 얼씬대던 잠자리가 거미줄에 걸렸다 잠자리도 거미도 꼼짝 않는다 죽길 기다리거나 내 손 눈치챘거나

  너희는 운명을 믿는 거니?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이튿날 거미줄엔 잠자리 파편만 하늘하늘, 거미는 여전히 지붕 밑에 딱 붙어 나를 노리고

  내 껍질도 거미줄에 전시될지 몰라
  우주를 말하자면 우리 서로 다를 게 뭐 있겠냐만

  벽돌 던져 뱀을 죽인, 사람이든 무엇이든 별걸 다 고장 낸
  너를 단박에 터트릴 수도 있는 무기, 자 봐
  무소불위 나의 손, 열 개나 되는 이 손가락

  그래서 말인데, 얘야
  거미줄 치는 재주가 있다 해도 함부로 까불면 안 돼
  모든 목숨은 비밀병기 하나는 품고 살거든

 

___<다층> 2020.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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