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쓰기

사랑의 한 연구__‘Luyten b’의 한때

섬지기__황희순 2022. 4. 18. 10:05

사랑의 한 연구

   __‘Luyten b’의 한때

 

  황희순

 

 

  나뭇가지에 앉아 틈 비집고 들어갈 듯 들어갈 듯, C가 바위를 노려보고 있다. 공중에서 사뿐 내려온 AC의 뿔을 쑥 뽑아 들고 우거진 수풀 속으로 총총 스며든다. 그늘에서만 자라는 뿔, 하루를 견디려면 뿔을 잘 키워야 해. 뿔이 양식이자 내비게이션인 이곳에선 날개 없이도 꿈틀꿈틀 날아다니지. AC가 옥신각신하는 사이 또 다른 A가 숲에 내려앉는다. 칼바람 몰려오는데 B가 보이지 않는다. 아픈 뿔을 훔켜쥐고 바이러스로 뒤덮인 지구를 궁금해하더니 어디로 간 것일까. 뿔을 주머니에 욱여넣은 또 다른 A가 코를 벌름대며 두리번거린다. B를 찾는 게 분명해. 서로를 야금야금 뜯어먹는 전희가 그리운 거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이 별에선 표독해져야 해. 몸이 절반으로 잘리면 머리와 꼬리가 죽을둥살둥 싸우는 불독개미 같은 의지가 필요해. 살 한 점까지 서로 싸악 핥아먹어야 죽을 수 있어. 수많은 돌연변이 좀비와 포노 사피엔스 클론 A들이 사는 이곳에선 죽여주는 게 진정 사랑이야.

 

 

*「사랑의 한 연구」 : 박상륭 소설 <죽음의 한 연구> 변용.
*‘Luyten(루이텐) b’는 지구형 행성으로 12.2광년 떨어진 적색왜성 Luyten Star를 공전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 행성이 지구처럼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액체 상태의 물 또한 존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_____<학산문학> 115. 2022.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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