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구경하기 동물원 구경하기 황희순 우리 사이엔 튼실한 철조망이 있다 맹수일수록 좁은 공간에 홀로 갇혀 사는 법 나는 당신이 더 사나운 맹수라 하고 당신은 내가 더 사나운 맹수라 한다 나는 당신이 우리에 갇혀있다 하고 당신은 내가 우리에 갇혀있다 한다 나는 당신이 먼저 변했다 하고 당신은 .. 詩쓰기 2016.05.10
수혈놀이 수혈놀이 황희순 처음부터 우리 사이엔 날선 칼이 놓여있었지 서로를 넘나드는 발자국에 피가 묻어났지 나란히 누워 마주보면 이빨 사이로도 피가 스몄지 그 피 서로 핥아주며 낄낄거렸지 너의 외로움과 나의 즐거움이 부딪치면 불똥이 튀었지 손만 잡아도 터지는 상처는 꽃을 피웠지 .. 詩쓰기 2015.12.10
耳順 耳順 황희순 밤을 까먹다 토막 낸 벌레가 머릿속에 알을 슬었나보다 혼자 있을 때면 사각사각 갉는 소리가 난다 나, 곧, 껍데기만 남을 게 뻔하다 이제야 비로소 내 몸에 무엇이든 담을 수 있겠다 ㅡㅡ<다층> 2015. 가을. 詩쓰기 2015.08.24
겨울의 역사 겨울의 역사 _정형외과 병동 724 황희순 반듯하게 누우세요. 무릎을 세우세요. 나의 상상력이 귀를 쫑긋 세운다. 울지 말어, 울긴 왜 울어. 괄괄하던 그녀가 나긋나긋 말한다. 병수발하던 팔순 남편이 간호사를 밀치듯 코를 팽 푼다. 반듯이 세우세요. 더 벌리세요. 여자는 기저귀를 차고 .. 詩쓰기 2015.01.05
절호의 찬스 절호의 찬스 황희순 Enter키 실수 한 방으로 컴퓨터에 저장된 File을 몽땅 날렸다 정수리까지 넘실넘실 고였던 기억이 깨끗이 비워졌다 앗, 이때다, 도망가자! 도망가다 땅이 푹 꺼진다면, 하여 생매장된다면 한 천년 후, 석수장이 정에 맞아 깨어난다면, 깨어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해.. 詩쓰기 2014.06.09
별의 변주 별의 변주 _空無路程 황희순 머리맡에 수백 개 별이 떠있었어요 한 달에 꼭 한 개씩 따먹었지요 반짝이는 별을 따먹어도 고단한 허기만 몰려왔어요 뱃속에 열 달 머물다 나온 특이한 별도 있었어요 희망이던 그 별은 하늘로 갔어요 하늘로 간 별은 무엇이 되었을까요 이러구러 바장대다 .. 詩쓰기 2014.06.09
데칼코마니 데칼코마니 황희순 몸에 박힌 옹이를 한 개씩 뽑아 너에게 심고 싶다 모든 옹이가 통증이 스며있는 건 아니다 네 것을 뽑아 내게 심는다면 기꺼이 중심을 내놓을 것이다 이 별을 숨쉬게 하는 건 서로 다른 너와 나의 옹이다 ___웹진 시인광장, 2013. 5, 詩쓰기 2013.04.28
새 시집 <미끼> 네 번째 시집 <미끼> 출간 시인의 말______ 그가 나를 지웠다 나도 나를 지웠다 말끔히 지 워지지 않는 발은 모른체, 발의 상징부터 지웠다 흘린 발자국은 별이 되거나 새가 주워 먹거나 표제 시______ 미끼 처음 만난 사람이 새끼손가락을 떼어갔다 다음 사람이 귀를 떼어갔다 다음은 입.. 詩쓰기 2013.03.27
입춘 무렵 입춘 무렵 황희순 쉰 살 그녀가 칠순 노인이랑 동면에 들듯 동거를 시작했다. 그 나이에 밤일이나 제대로 하겠냐며 애저녁에 접으라고 말렸다. 그녀는 저보다 더 세다며 키들키들 잠수를 탔다. 입춘 무렵 동면에서 깨어나듯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늙은이가 그새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 詩쓰기 2013.02.15
낯선, 혹은 날선 낯선, 혹은 날선 황희순 도 개미랑 한집에 살았죠. 어느 날 그들이 무더기로 죽었어요. 살충제를 뿌린 적도 없는데 어떤 힘에 밀린 건지 알 수 없어요. 그날 이후,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아요. 머리맡이 더 적막해요. 레 쇠박새가 베란다 난간에 날아와 종알종알 말을 걸었어요. .. 詩쓰기 2013.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