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쓰기

낯선, 혹은 날선

섬지기__황희순 2013. 1. 29. 09:46

 낯선, 혹은 날선

  황희순

 

 

 

  도

  개미랑 한집에 살았죠. 어느 날 그들이 무더기로 죽었어요. 살충제를 뿌린 적도 없는데 어떤 힘에 밀린 건지 알 수 없어요. 그날 이후,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아요. 머리맡이 더 적막해요.

 

  레

  쇠박새가 베란다 난간에 날아와 종알종알 말을 걸었어요. 귀벽이 환해지며 목젖이 뻐근해지데요. 한참을 듣다가, 그래그래 아가야, 고개만 끄떡끄떡.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요.

 

  미

  땅콩장수가 비둘기에게 땅콩을 잘게 씹어 던져주고 있었어요. 한쪽 발가락 뭉텅 잘려나간 놈은 찌뚱거리며 시멘트 바닥만 찍어대요. 가까이 던져주지만 자꾸 빼앗겨요. 쫓는 시늉을 하자 발가락 없는 놈이 먼저 제일 높이 날아오르네요.

 

  파

  호떡을 먹다가 꿀물이 손에 묻었어요. 벌 한 마리 날아와 간질간질 빨아먹네요. 독하고 모질어 나는 내가 못쓰게 된 줄 알았지요. 그런데 숫된 요 녀석이 날아오다니, 사람으로 안 보다니. 아하, 내가 먹잇감이라니∼.

 

  솔, 라, 시,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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