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먹다 벌레 먹다 황희순 복숭아 껍질을 깎다가 벌레를 베었다 도막 난 벌레 한쪽은 복숭아 살에 또 한쪽은 끈끈한 칼에 붙어 꿈틀~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가슴을 쓰윽 긋고 지나갔다 하얀 피가 묻어났다 벌레를 도려내고 칼을 다잡았다 나머지 껍질을 깎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도 손.. 詩쓰기 2007.04.10
변신 변신 황희순 가으내 꽃처럼 피어 있던 홍시 똥덩어리처럼 변신하여 동면에 들었다 함박눈 내리고 까치가 쪼아대도 꿈쩍 안 했다 봄이 성큼 다가와 동면에 든 그를 흔들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그는 깨어나지 않았다 목 떨어져라 그 광경 지켜보다 깜빡 졸았다 조는 사이 가을 깊어져 환하.. 詩쓰기 2006.11.16
봄은 무덤이다 봄은 무덤이다 황희순 발목을 다쳤다. 아픈 만큼 가슴에 텅텅 여백이 생겼다. 바람 든 무처럼 가벼워졌다. 너는 너무 무거워, 도대체 외통수야. 지난겨울 그가 코앞에 날카로운 금을 긋고 지나갔다. 무 자르듯 잘라 숭숭 구멍 뚫린 나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겨울이 다 가도록 나는 그 금을 넘지 못했다. .. 詩쓰기 2006.10.03
파란불이 켜지지 않는 방 파란불이 켜지지 않는 방 황희순 오래 전 깨뜨린 유리컵이 방구석에 뿌리를 내렸다 잠자리에 들면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살을 찌르며 몰려다닌다 밤마다 오도가도 못 하는 피투성이 시간이 상처를 통과한다 팔다리 잘린 몸통이 어둠에 둥둥 떠내려간다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다 잠에서 깨.. 詩쓰기 2006.08.25
한눈팔기 한눈팔기 ―고추장을 담그며 황희순 어디 없을까 옹기 같은 가슴에 쓸어 담아 푹, 익혀도 좋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찍어봐도 맛이 나는 사람 어디 없을까 詩쓰기 2006.07.10
엉겅퀴 붉게 피던 엉겅퀴 붉게 피던 ―하동 돌고지山房 추억.2 황희순 내가 묵는 방은 냉골이었다. 깨진 유리창 틈으로 밤마다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겨우내 불 한번 지피지 않은 아궁이는 검은 연기를 울컥울컥 토해냈다. 검은 연기 자욱한 처마 밑엔 황토로 빚은 남근 모형이 즐비했다. 꺼무트름 발기한 그것들은 시도.. 詩쓰기 2006.05.22
봄이면 나는 개가 된다 봄이면 나는 개가 된다 ―하동 돌고지山房 추억.1 황희순 기관지암이 깊은 장순아는 요양 중이었고 나는 아이를 잃고 도망치듯 그곳에 숨어들었다. 야수 같은 산방 주인은 산으로 들로 다 죽어가는 우릴 끌고 다녔다. 봄비 내리는 날 소금 구울 대나무를 베러 갔다. 큰 나무를 베면 밑동에 맑은 액이 고.. 詩쓰기 2006.05.22
비둘기 눈 속으로 들어가기 비둘기 눈 속으로 들어가기 황희순 화분에 버려둔 해바라기를 비둘기 한 쌍이 날아와 쪼아먹는다 순한 눈 가까이 보고 싶어 다가갔다 갸웃갸웃 나를 읽더니 날아간다 쌀을 한 줌 갖다 놓았다 이젠 하루에도 몇 번씩 날아온다 읽을거리가 있다는 듯 눈을 맞춰도 날아가지 않는다 콕콕 쌀을 쪼을 때마다.. 詩쓰기 2006.01.31
권태倦怠 권태倦怠 황희순 평생 한 자리에 서있는 벚나무 얼마나 걷고 싶을까 떼놓을 수 없는 발 잘라먹고 싶을까 주저앉고 싶을까 동그랗게 몸을 말아 데굴데굴 구르고 싶을까 도망치고 싶을까 저 나무 뽑아다 천장에 매달아 놓아야지 나도 이제부터 거꾸로 매달려 자는 거야 반듯이 누워 자는 것 이제 질렸어.. 詩쓰기 2006.01.31
뱀딸기 전설 뱀딸기 전설 황희순 뱀이 침 뱉어 놓는다는 뱀딸기, 먹으면 한밤중 뱀이 기어들어 뱀 새끼 밴다 했다. 징그러운 뱀이 된다 했다. 할머니 말 믿기지 않아 빨갛게 익은 뱀딸기 따먹고 말았다. 맛대가리 없는 그것을 몰래 꿀떡 삼켜버렸다. 그리고 나는 서서히, 느물느물, 뱀이 되어갔다. 똬리.. 詩쓰기 200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