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무덤이다
황희순
발목을 다쳤다. 아픈 만큼 가슴에 텅텅 여백이 생겼다. 바람 든 무처럼 가벼워졌다. 너는 너무 무거워, 도대체 외통수야. 지난겨울 그가 코앞에 날카로운 금을 긋고 지나갔다. 무 자르듯 잘라 숭숭 구멍 뚫린 나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겨울이 다 가도록 나는 그 금을 넘지 못했다.
싹 난 감자를 땅속에 몽땅 묻어버렸다. 잘라도 잘라도 시퍼렇게 싹 돋는 봄이 징글징글했다. 한번 긋고 지나간 금은 지워지지 않는다. 목련꽃 진다. 이제 금 간 나를 지울 차례다. 언제부턴가 그를 향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메워도 쓸데없이 자꾸만 깊어졌다. 그 깊이만큼 묻을 것이다. 봉분 없는 내 무덤 위엔 해마다 삼베조각 같은 목련꽃잎이나 하릴없이 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