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쓰기

엉겅퀴 붉게 피던

섬지기__황희순 2006. 5. 22. 12:25

 

엉겅퀴 붉게 피던

―하동 돌고지山房 추억.2

 

  황희순

 

 

 

내가 묵는 방은 냉골이었다. 깨진 유리창 틈으로 밤마다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겨우내 불 한번 지피지 않은 아궁이는 검은 연기를 울컥울컥 토해냈다. 검은 연기 자욱한 처마 밑엔 황토로 빚은 남근 모형이 즐비했다. 꺼무트름 발기한 그것들은 시도 때도 없이 꿈틀거렸다. 7년째 산모퉁이 움막에서 苦行한다는 최씨 남근은 일곱 살 머슴애의 그것처럼 말갛게 진화되었단다. 어이 최씨, 써먹도 못하는 그거 뗘내뻐리고 이거 달어. 죽염가마 화덕에 불땀을 맞추던 산방주인은 빚고 있던 팔뚝만한 남근 모형을 최씨 사타구니에 갖다 대면서 킬킬거렸다. 죽염가마에서는 누릿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돌같이 굳은 죽염덩어리 망치로 깨부수며 나는 눈부신 봄 햇살을 견뎠다. 부르튼 손바닥 물집은 아까시나무 가시로 터트려 죽염을 뿌렸다. 장순아와 나는 진물 흐르는 서로의 상처를 보여주며 킬킬거렸다. 짠맛은 굽는 횟수가 늘수록 조금씩 순해졌다. 봄 내내, 뜨겁게 달아오른 죽염가마를 들락거리며 눈물나게 짠 내 상처를 굽고 또 구웠다.


*황토로 빚은 남근 모형을 죽염가마에 넣었는데, 지리산 여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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