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먹다
황희순
복숭아 껍질을 깎다가 벌레를 베었다
도막 난 벌레 한쪽은 복숭아 살에
또 한쪽은 끈끈한 칼에 붙어 꿈틀~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가슴을 쓰윽 긋고 지나갔다
하얀 피가 묻어났다
벌레를 도려내고 칼을 다잡았다
나머지 껍질을 깎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복숭아는 밤에 먹어야 이뻐진단다, 얘야
상처도, 상처에 돋아난 뿔도, 먹으면 약이 된단다
아버지! 이제 그만 무덤에서 나오세요, 가을이에요
벌레 먹은, 아까워하던 당신 딸을 이렇게 깨끗이
껍질 벗겨 놓았어요, 이거 우리
같이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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