幻, 질긴
황희순
파리 한 마리 들어와 더운 한낮을 약 올린다. 창을 열어둔 채 잠시 잊기로 한다. 나갔으려니 생각한 이놈이 능청맞게 파리채에 죽은 듯 붙어 있다.
노려보다가 헛손질을 했다. 그러기를 얼마, 그는 그렇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위기의 순간에 나보다 더 화를 내거나 웃을 때는 더 푸닥지게 웃거나 돌아서고 싶을 때 납작 엎드려 싹싹 빌거나 죽을상을 하거나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덜미를 물고 늘어졌다. 그는 사방 벽을 가볍게 넘나들었으나 나는 방안이나 맴돌았다. 한방에 때려눕힐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쉽게 끝장나는 게임은 싱겁지 않은가.
하루가 기울고 있다. 어두워지면 저 징그러운 것 어디에 숨어 나를 또 훔쳐볼라나. 구닥다리 파리채 버리고 강력 살충제를 뿌려야 되나. 고요를 만나고 싶다.
--(시와경계, 2009.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