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배경
황희순
막다른 골목에 서있던 그 봄, 발길 닿는 곳마다 경로이탈 경고음이 울렸다. 더 이상 디딜 곳 없어 발을 잘라 몸속 깊이 숨겼다. 발을 숨긴 몸에 여러 갈래 길이 생겼다. 길은 점점 자라 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위태로운 바람이 여름을 가을을 겨울을 아슬아슬 지나갔다. 달거리도 오락가락했다. 금간 틈새를 비집고 손 하나가 들어왔다. 그 손은 낯선 길로 나를 데려가 발이 되어주곤 했다. 길 끝을 틀어쥐고 있는 손에 길들여진 몸이 발 없이도 밖을 나다녔다. 발/길을 문득문득 잊었다. 느슨하거나 팽팽해진 길 위, 어릿광대가 되어갔다.
____2012. 가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