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쓰기

명자꽃 피다

섬지기__황희순 2011. 7. 17. 14:54

        


  명자꽃 피다

   황희순

 



   이끼 속에 빌붙어 있던 먼지보다 작은 주머니(알)들이 수수만 년 쫓고 쫓기다 보니 어떤 건 쥐가 되고 독수리가 되고 어떤 건 멧돼지가 되고 노름꾼이 되고 어떤 건 미어캣이 되고 시인이 되었다
   그들의 눈이나 날개나 꼬리나 발톱은 다 고통을 건너기 위해 생긴 뿔이다 고통이 심할수록 더 교묘히 진화되었다 모든 뿔은 밖을 향해 있다, 하여 누구나 한눈팔면 끝장난다 죽음은 간발의 여유도 주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지금은 목줄 묶인 개처럼 잠시 뿔을 옴츠리고 오백 년 전 사라졌을지도 모를 별, 하늘을 바라 그 흐린 별빛이나 물어뜯으며 컹컹 노니는 명자꽃 만발한 봄밤이다, 명자야


__《화요문학》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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