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566

창고의 문/정온

창고의 문 정 온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할 때 늘 누군가는 죽었다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둠 속에서 가만히 이빨을 숨기고 있는 예리한 날들 새로 산 내의처럼 달라붙는 생각이 가려워 가려워서 제 몸을 핥다가 물다가 붉은 상처를 낸다 누군가 죽었으면 할 때 아무도 죽지 않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눈을 찌르는 불면은 칼날이 되고 톱날이 되어 제 입에 제 뼈를 물리고 악다물어! 덜덜 떨면서 버티면 서서히 평화가 새벽하늘에 기어오르고 문을 닫으면 나도 사람이 된다 **정온 시집 『소리들』(푸른사랑. 2022. 12. 30.)에서 **정온 시인 : 2008년 작품활동 시작. 시집 『오, 작위 작위꽃』

그림자놀이

그림자놀이 황희순 쥐로 살거나 개미로 살거나 뭐가 다르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의심하며 사람 아니면 어쩌나 가슴을 쓸어내린 적 있지 그런 때도 있었어 내 속에 들어앉은 나를 오래 모른척했지 내 눈을 봐, 뭐가 보이니 혹시 벽돌에 눌린 뱀? 그랬지, 한때 사람 아닌 적 있었지 내가 나를 꾸욱 밟아 죽인 적 있지 그래서 말인데, 솔직히 말해봐 나는 어디에 쓰는 도구니 나는 왜 나를 지울 수 없는 거니 __ 2022. 하반기

詩쓰기 2023.01.15

허수아비 근황

허수아비 근황 황희순 티브이 화면 가득 촛불이 일렁여요 그가 화면에 비친 아들 손을 잡으려 팔을 길게 뻗어요 촛불 든 허수가 아비를 불러요 아버지이~ 한쪽으로만 열린 그들 귀는 목청을 돋워도 들리지 않아요 서로서로 만들어놓은 상하좌우 벽을 누구도 넘을 수 없어요 벽은 나날이 견고해지고 발자국마다 노여움이 고여 넘치려 해요 한 무리는 뒷걸음하고 한 무리는 게걸음하고 또 한 무리는 뛰어가며 정답이라고 우겨요 어깨 겯고 나란히 걷던 시절이 있긴 있었던가요 가상도 현실도 아닌 곳에서 쪼글쪼글 홀로 시들어가는 베이비부머 J, 당당하던 걸음걸음은 누가 비틀어놓았을까요 한때 사람속(屬)이었던 그의 꼿꼿한 뼈는 누가 다 뽑아갔을까요 ___ 2022. 하반기.

詩쓰기 2023.01.15

진실한 마음 삽니다

진실한 마음 삽니다 황희순 테미네거리‘인간서비스센터’에서는 고장난인간을고쳐준다는데 아무도모르게구제한다는데 어떤소원이든들어준다는데 의사가모르는병도물로불끄듯한다는데 의심하면효험이없다는데 진심만있으면된다는데 세상답을다알고있다는데 …… 우리의애틋한시간은다시올것같지않아 신통방통한곳이가까이있는데 이땅은왜첩첩지뢰밭인거니 도통하면일년을백년을 전광석화로살수있을텐데 밤은왜이토록긴거니 진실한맘은어떻게생긴거니 얼마면되니/그런데말이야 그곳은쥐새끼만들랑거리는지 셔터가바닥에닿을듯말듯늘걸쳐있어 의심하는인간은혹시 쥐로고쳐서내쫓거나구워먹는건아니겠지? __ 2022. 하반기

詩쓰기 2022.12.21

꿈꿈

꿈꿈 황희순 천천히 숨을 쉬면 시간이 정말 천천히 갈까요* 감춰놓은 시간은 왜 광속으로 사라지는 걸까요 신은 우리 몸에 천사 얼굴을 한 악마를 한 마리씩 심어놓고 구경한대요 이 구역 모든 일은 악마가 결정해요 시간은 악마의 무기, 그러니 누가 희망을 말하겠어요 그렇다고 절망만 있겠어요 사라진 시간만큼 발걸음 가벼워질 테니까요 쓸모없는 말은 천적의 먹잇감이라 늙은 기러기는 자갈을 입에 물고 날아간대요 나무와 돌멩이와 꽃이 왜 말을 하지 않는지 알 거 같아요 답답증이 밀려와도 숨 참아가며 견뎌야 해요 파도에 무엇이 밀려올지 모르잖아요 이렇듯 오래 꿈꿨어요 우린 별의 화석, 꿈에서 깨어나면 태초의 목록 α가 되겠지요 똑바로 걷는 건 두려운 일이에요 그러니 비몽사몽 헤매다 다시 별이 되겠지요 발밑은 여전히 어둠..

詩쓰기 2022.12.21

인간되기 프로젝트__ 황희순의 신작시/황정산

인간되기 프로젝트__ 황희순의 신작시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우리는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거나 잘못된 언행을 하는 사람을 보면 “이 인간아!”라고 하며 혀를 끌끌 찬다. 인간 같지 않은 사람을 인간이라 부르는 이 반어적인 표현을 통해 그 사람의 우매함이나 악행을 힐난하고 제대로 된 사람이 되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과연 인간으로서 고유한 가치와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인간이 되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 황희순의 시는 바로 이런 질문들을 우리에게 던진다. 시인은 먼저 자신이 과연 사람일까를 의심한다. 쥐로 살거나 개미로 살거나 뭐가 다르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의심하며 사람 아니면 어쩌나 가슴을 쓸어내린 적 있지..

나의 詩 비평 2022.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