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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불순물

고요의 불순물 황희순 울음과 노래를 분간할 수 없던 그때, 애매미는 까르르까르르 웃고 참매미는 그래도 참아라참아 고함 지르고 나흘째 우화 삼매에 빠져 꼼짝 않는 매미 유충의 툭 불거진 눈 들여다보다가 폭발한 나를 나는 단풍나무 밑에 파묻어버리고 굼벵이로 살기 위해 애매미는 온종일 웃고 매미로 살기 위해 굼벵이는 여름을 또 견디고 웃는 애매미가 궁금한 직박구리는 그를 콕콕 찍어보고 참아라 고함 지르는 참매미를 참지 못하고 물까치는 날름 물어가고 흰나비는 장다리꽃에 질질 끌려가고 참새 따라 날고 싶은 개는 꿍얼꿍얼 욕이나 해대고 단풍나무는 누군가에게 밑동을 베이고 여름내 바장이던 나는 한 달 전 파묻은 나를 찾아 캄캄한 고요를 뒤적이고 뒤적일수록 고요는 첩첩 쌓이고 나는 나에게서 조금씩 멀어져가고 __ 20..

詩쓰기 2023.06.17

슬픔강박증

슬픔강박증 황희순 목구멍에 매달려 살을 파먹던 그것, 그것을 뱉으려다 모가지를 잘라 버린 적 있다. 하여 이 머리는 새로 돋은 거라 우겼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들앉은 그것은 아마도 살아있는 돌이거나 대못이었을 거다. 움푹 파인 그곳에 아직도 세포가 남아 숨이 닿으면 덜그럭거린다. 개미야 모기야 초파리야, 여전히 어둠을 뭉쳐 그러안고 산다 해도, 바닥 없는 벼랑을 건너는 중이라 해도, 그래도 그래도 우리 서로 가슴은 절대 들여다보지 말자. 안부를 묻지도 부고도 하지 말자. 한 오백 년 후쯤 우리은하 끄트머리 어디, 눈물 한점 반짝 떴다 사라지겠지. 그제야 환한 저녁 벼랑 없는 바닥 만날 수 있겠지. __ 2023. 봄.

詩쓰기 2023.03.21

가끔 흐림

가끔 흐림 황희순 그날 이후, 낮은 길고 거울은 조금씩 낡아가고 네가 사라진 곳으로만 바람이 분다, 그곳으로 봄이 가고 또 가고 라일락꽃 피면 가슴을 뚫고 비어져 나오는 심장, 꾹꾹 눌러도 비죽비죽 비어져 나오고 또 나오고 잊으면 안 되는 너를 때때로 잊고도 사는 나의 정체가 미심쩍어 기억 한 모퉁이 뭉텅 베어 들여다보니, 사이사이 노랑나비였다가 고추잠자리였다가 나비였던 나를 잠자리였던 나를 어미였던 나를 덜컥 늙어버린 나를 네가, 알아볼 수 있을까 너 있는 곳은 얼마나 가까운 거니 __ 2023. 봄

詩쓰기 2023.03.21

자발적 유배 비록

자발적 유배 비록 황희순 여행 떠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__헤르만 헤세 어디, 일탈하고 싶은 생각에 잠겨본 적 없는 이 있을까? 일탈뿐이겠는가. 모래알같이 많은 나날, 사표를 던지고 싶거나 불편한 누군가와 절연하고 싶거나 어려운 사업 접고 싶거나, 결정장애자처럼 망설이고 망설이다 인생 끝날 것 같아 속이 썩을 때 왜 없었겠는가. 실패할 용기가 가장 큰 용기라 했다. 유쾌하지 않은 일을 결행했다면 실패한 거나 다름없다. 그 후 생각지 않은 어려움이 닥쳐온다 해도 타의가 아닌 자의로 결정한 일이니 또 다른 용기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지겨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돌고 돌다 제자리로 돌아오겠지만, 결국은 그렇게 될지라도, 새로운 환..

산문쓰기 2023.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