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쓰기

자발적 유배 비록

섬지기__황희순 2023. 2. 19. 19:34

자발적 유배 비록


황희순

 

여행 떠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__헤르만 헤세

 

  어디, 일탈하고 싶은 생각에 잠겨본 적 없는 이 있을까? 일탈뿐이겠는가. 모래알같이 많은 나날, 사표를 던지고 싶거나 불편한 누군가와 절연하고 싶거나 어려운 사업 접고 싶거나, 결정장애자처럼 망설이고 망설이다 인생 끝날 것 같아 속이 썩을 때 왜 없었겠는가. 실패할 용기가 가장 큰 용기라 했다. 유쾌하지 않은 일을 결행했다면 실패한 거나 다름없다. 그 후 생각지 않은 어려움이 닥쳐온다 해도 타의가 아닌 자의로 결정한 일이니 또 다른 용기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지겨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돌고 돌다 제자리로 돌아오겠지만, 결국은 그렇게 될지라도, 새로운 환경을 살면서 반짝거리는 나를 잠시라도 되찾게 될지 모르니 누가 그런 시간을 손에 쥐여주겠는가.
  봄마다 도지는 상처, 더욱더 싫어지는 하늘과 거리, 나는 대전을 떠나 봄을 살아보기로 맘먹고 은둔할 곳을 구했다. 길눈이 어두워 내비게이션을 보고 또 보며 실패할 용기를 다졌다. 두 달을 계획하고 2019년 3월 초, 찌든 일상을 뒤로하고 제주행 비행기에 가뿐히 몸을 실었다.

  제주도 서쪽 끄트머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대전과 공기가 달랐다. 서울 사는 E모 선배 시인의 별저, 간혹 문인들에게 무상으로 빌려주기도 한다는 그곳은 한적하고 마당이 넓은 양옥집이었다. 한동안 비어있던 집은 화산섬이라선지 검은 먼지가 쌓여있었다. 서너 시간 깨끗이 청소하고 짐을 풀었다. 자발적 유배, 난생처음 느끼는 신선한 낯섦에 약간의 흥분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곳을 다녀간 익히 알 만한 몇몇 시인들의 방명록을 훑어보며 첫 밤을 맞았다. 말로만 듣던 제주의 바람이 밤새도록 창을 거세게 흔들어댔다. 잠을 설치고 맞이한 첫 아침, 꽃과 풀과 나무 가득한 마당에 서서 심호흡하며 일탈의 홀가분함을 온몸으로 받아 안았다. 바다가 보고 싶었지만, 비바람이 그치질 않아 하늘만 치어다보며 이틀을 보냈다.
  사흘째 되던 날 첫 산책길을 나섰다. 동백꽃 낭자하게 떨어진 고즈넉한 골목을 지나 15분쯤 걸어가니 녹고물오름(77m, 수월봉)이 있었다. 들뜬 마음을 읽었다는 듯 그곳 바다와 하늘은 환상적인 쪽빛을 보여주었다. 그날 이후, 비만 오지 않으면 수월봉과 엉알해안길과 노을해안길을 아침저녁으로 걷고 또 걸었다. 매일 다른 표정인 해거름 바다, 해가 잠길 때까지 나는 넋 놓고 서 있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 길가엔 잎을 접으며 잠잘 준비하는 토끼풀이 참쑥이 있어 가만가만 걸었다.
  집 앞을 오가며 나를 살피던 옆집 개가 일주일쯤 지나자 산책길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나도 개가 무서운데 개도 내가 무서운 모양, 걷다가 돌아보면 멈칫멈칫 딴청을 피웠다.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 가까이 오면 싫은 내색을 했더니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를 매일 스토킹했다. 우린 마지막 날까지 서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골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맑은 날이면 별이라도 하나 떨어져 있을 것 같은 어둑한 돌담길을 서성서성 고요에 귀를 기울였고, 달이 뜨면 적막한 노을해안길을 걸으며 달넘이를 즐겼다. 달넘이를 즐기는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돌아오는 길 끝에 서서, 내 목소리는 안녕한가, 살아는 있는 건가, 모기만도 못한 소리로 나를 불러보기도 했다. , 야야!

  수월봉 앞바다 가득 빛나는 윤슬은 이 땅을 견딘 이들 눈빛이래
  어두워지면 저쪽 하늘로 올라가 반짝인대

  이쪽 모든 존재도 저쪽에서 보면 별같이 빛날지 몰라
  죽은 이의 자리는 이쪽일까 저쪽일까

  나는 살아있는 걸까 죽은 걸까

  산비둘기는 전봇대에 앉아 나를 읽고 있다는 듯
  그렇지그렇지, 그 말만 매일 되뇌다 사라진다

  넌 어디로 날아간 거니

  상현달 중천에 걸린 지금, 내 눈빛 보고 있는 거니
  나도 너처럼 반짝이니

___「막다른 봄ㆍ1」

  마당은 쥐며느리 세상이었다. 풀을 뽑아도 나뭇가지나 돌을 들춰도 어디든 바글거렸다. 뜰팡에 서 있으면 발밑으로 기어들기도 했다. 진창도 풍덩풍덩 밟고 다닌 이 발은 위험한데, 믿으면 안 되는데, 내 발밑을 나도 본 적이 없는데, 질끈 밟을지도 모르는데, 어쩌려고 나를 풀이거나 썩은 나뭇가지로 여기는 것이냐. 이웃 닭이 와서 흙을 파헤쳐가며 쥐며느리를 쏙쏙 주워 먹었다. 이곳은 본래 그들의 땅, 나의 은둔을 방해하지 않으니 나도 그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옆집 주인이 어느 날 찾아왔다. 사투리 때문에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 집을 산 건지 이곳에서 계속 지낼 건지 묻는 듯했다. 제주어지만 우리말인데 소통할 수 없다니, 무척 당황했다. 손짓을 섞어가며 몇 마디 주고받은 후 그곳에 머무는 동안 그녀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하루하루 또 하루하루가 단출히 저물어갔다. 봄은 깊어지고 따듯한 햇살에 나뭇잎 자라는 소리가 손에 잡힐 듯했다. 산책길 오가며 딴 쑥잎과 번행초 새순으로 화전을 부쳐 먹기도 하고 마당귀에서 자라는 향 깊은 스피아민트 여린 잎을 따서 따끈한 물에 우려 마시며 어느새 나는 바닷가 그길 그집 그방 부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두 달을 약속했으나 49일이 지나고 50일 지나 신선도 떨어지는 일상이 되어갈 즈음, 여기저기 부려놓았던 마음 그러모아 싸안고 그곳을 떠났다. 비행기는 왜 그리 빠르게 날던지, 선잠 자다 헛꿈 꾼 듯 광속으로 본거지에 도착했다. 시계가 고장이라도 났던 걸까? 아니, 제주에서의 시간은 前生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하소연하는 이에게 소크라테스는, “아마도 자네는 자신을 짊어지고 여행한 모양일세.” 했단다. 내 안에 똬리 틀고 있는 나를 죽지 않고서야 찰나라도 어찌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나는 나를 짊어진 채 바람과 바다와 별과 서늘한 달빛과 매일 만나는 바닷새들을 벗하며 제를 지내듯 잠시 일탈을 누렸다. 속세계는 본래 어두운 터널, 이따금 반짝반짝 약한 번개라도 쳐준다면 한눈이라도 팔겠지만 이 또한 사소한 꿈일 뿐인 거지. 즐거움은 찰나 느끼는 감정, 남은 시간 가능한 한 덜 힘들게 살 수 있기만을 소망한다. 고통이 진화를 부추긴다 했으니 시련이 닥친다 해도 나는 나를 믿고 나답게 마지막까지 걸어갈 뿐이다.

__<시에> 2023.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