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쓰기

사바아사나

섬지기__황희순 2018. 4. 25. 10:10

 

  사바아사나

 

   황희순

   

 

 

 

  고통의 색깔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정신적 고통은 복잡하니 얘기하지 않기로 하고, 육신의 고통은 희한하게 시간이 지나면 잊는다. 여성들의 출산의 고통을 예로 들어도 그렇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러했듯, 까마득 잊고 출산을 또 준비한다. 한때 나는 인체의 대들보인 허리를 앓은 적 있다. 어떤 기관이든 고장 나면 불편하지만 특히 허리는 조금만 아파도 일상생활이 불편해진다. 성석제는 소설 인간적이다에서, “인체에서 ‘리’자로 끝나는 대표적인 기관은 머리, 허리, 다리다. 머리는 하늘에 가깝고 다리는 땅에 닿아 있으니 이상과 현실, 계획과 실천,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은 다 머리와 다리 하기에 달렸다. 하지만 허리가 없으면 두 기관은 따로 놀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여 년 전, 세상과 나 사이에 담을 한 채 높이 쌓아놓고 병적(病的)으로 한 3~4년, 책만 읽던 시절이 있었다. 깜깜한 터널을 통과하며 눈 둘 곳을 찾지 못하다가 책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던 것이다. 서재를 열어주신, 지금은 안 계신 임강빈 선생님 댁과 헌책방을 들락거리며 책을 실어 날랐다. 재미나 취향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마지막 쪽 끄트머리 문장부호까지 싹싹 핥아먹듯 읽어댔다. 곁방에 엎드려 책을 읽다보니 허리가 아프고 몸은 말라갔다. 의사는 척추 4번과 5번 사이 디스크가 밀려나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괜찮아지겠지, 괜찮아지겠지 하며 1년이 넘도록 서성서성, 그래도 책을 놓지 못했다. 서있으면 통증이 덜하여 비루먹은 개처럼 동네 골목을 걸어 다니며 읽었다. 물리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없어 더 이상 살 의지가 희미해져 갈 즈음이었다. 통증클리닉 의사가, 신경차단시술을 3회 받고도 낫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거짓말같이 1차 신경차단시술 후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여 바로 낮은 산 오르기와 요가를 시작했다.

 

  그때 처음 찾은 동구문화원 요가교실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한동안 은둔하다 얼떨결에 낯선 사람들 틈에 파묻혀 둔해진 숨을 고르려니 겸연쩍었다. 내가 외계인이거나 허수아비만 같았다. 좌우 구별도 안 되고 팔다리도 내 것이 아닌 듯 맘먹은 대로 움직여지질 않아, 손이 발이 제자리에 놓여있는지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요가는 아픈 동작이 많아 반 년 정도는 자학을 버무려 벌(罰) 받듯 따라갔다. 그 후로는 감정을 조절할 만큼 통증을 즐기며 내 몸을 자각(自覺)하기 시작했다. 벌이 바로 수행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 3년, 일주일에 두 번 거르지 않고 지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유연해져 아프던 허리를 잊었고 기운도 좋아졌다. 기운이 좋아지니 자신감도 조금 생겼고, 쌓아놓았던 담을 허물고 다시 시와의 소통을 시작했다.

 

  그 시절 동구문화원 요가교실은 전통예절도 교육하는 곳이었다. 장례예절, 혼례예절, 차예절 등에 필요한 도구가 교실에 준비되어 있었다. 그 중 장례예절에 필요한 실제 관(棺)도 창가에 늘 놓여있었다. 어둔 터널을 통과하는 중에 만난 관은 나의 시선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삶과 죽음은 들숨과 날숨 사이에 있는 것이니, 요가 마지막 순서인 사바아사나 시간에는 바로 옆에 놓인 관 속에 누워있는 상상을 하곤 했다. 휴식을 잘 취하고 있을 때 몸의 에너지와 장기들은 더 활발해진다고 한다. 몸과 마음에 진정한 휴식을 주는 사바아사나,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죽음이지 싶다.

 

 

  의식은 깨워둔 채 온몸을 바닥에 모두 내려놓습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멈췄다 기일게 내쉽니다. 주검처럼 누워 깜빡 쉬는 사이, 들숨과 날숨 너머 棺이 삐꺽 열립니다. 돌아누울 여백조차 없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텅 비어있습니다. 뼈에 박힌 못을 하나씩 뽑아 텅 빈 경계에 징검다리를 놓습니다. 가벼워진 손가락 발가락을 꼼틀거리며 다시 산 사람들 틈에 슬쩍 끼어듭니다. 못으로 놓은 징검다리를 건너 다시는 산 사람들 틈에 끼어들지 않아도 될 그날이 오늘이면 좋겠습니다. 나마스떼.

__졸시 「사바아사나」

 

 

  나는 요가 마니아, 그동안 요가로 얻은 것이 많다. 육신은 물론 정신 건강도 좋아졌다. 최근엔 아픈 곳이 없으니 조금 게을러졌다. 하지만 15년을 열심히 익혔으니 몸에 필요한 아사나를 집에서도 혼자 집중할 만큼 여유가 생겼다.

 

  30~40대에는 시를 쓰고 독서를 하며 노후를 살 거라 생각했다. 처음 겪어보는 어설픈 노년기(현대의학은 60부터 노년기라 하니)에 접어들고 보니 그 두 가지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독서야 살살 하면 되겠지만 시는 살살 써서 되는 게 아니므로, 쉽지 않을 거 같다. 이제 몸과 마음이 시키는 대로 단출하게 살고 싶다. 올해 들어서며 가벼운 산행을 시작했다. 덧없이 흐르는 시간을 혼자서도 외롭다는 생각 않고 잘 놀아야 나머지를 무사히 건널 수 있으리라. 늙어가는 나와 늙기 싫어하는 나와 긴밀히 타협 중이다.◈

 

 

*****************

 

__2018. 여름, <시에>

 

황희순

__충북 보은 출생

__1999년 <현대시학> 등단

__시집 미끼 외 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