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쓰기

강물아, 어디로 가니

섬지기__황희순 2015. 2. 24. 10:54

  강물아, 어디로 가니
 
  황희순



  “인생이라는 강을 무난하게 떠내려갈 때는 주변 풍광만 바뀔 뿐 정작 자기는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러다 갑자기 눈앞에 낭떠러지, 즉 인생의 폭포가 나타난다. 이 폭포를 지나치면서 겪는 일은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진다.” -<독일인의 사랑>(프리드리히 막스 밀러)에서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풍덩, 파문을 일으키던 풍경을 끄집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10년이 지나도 아픈 일이 있는가 하면, 1~2년은 지나야 끄집어낼 수 있는 풍경도 있고, 죽을 때까지 괴롭힐 거 같은 사건도 있다. 어떤 풍경은 지분지분 물길을 막아 먼 길을 돌게 만들고, 즐거웠으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하여 나는, 뇌 속에 박힌 잡풀을 뽑아내듯 여태 살면서 모아두었던 사진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즐거웠거나 괴로웠거나 깊이 새겨진 기억을 끄집어내면, 돌아갈 수 없어서 또는 돌아보기 싫어서 대부분 번뇌와 맞닥뜨리게 된다. 폭포도 견디면서 여기까지 흘러왔는데 이도 저도 아닌 지나간 풍경들을 구경하며 어찌 멈칫거릴 수 있겠는가. 바뀌는 계절을 돌려세울 수 없듯이 다 시절인연이었던 것을.
  최근 겪은 폭포는 2013년 1월 6일, 세상을 떠난 엄마였다. 천붕지괴(天崩地壞) 같은 폭포, 엄마를 그날 그 자리에 두고 만 2년을 여기까지 흘러왔다. 자식들에게 임종 모습 보여주기 싫다던 자존감을 고스란히 지켜내고, 쓸쓸한 요양시설에서였지만, 잠자다가 가게 해달라고 기도한 대로 잠결에 생을 마감했다. 87년을 지지리 고생했지만, 고종명(考終命)도 복이라는데, 우리 형제들은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노환으로 몸 구석구석 아픈 엄마에게 엄살 피운다고 유난히 표독스럽게 굴던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어떤 시인이 상처는 더 큰 상처로 열어야 열린다고 했다. 십수 년 전 천붕지괴보다 더한 폭포를 겪은 후 눈물이 말랐다고 생각했는데, 상처가 더 크고 작고를 떠나 간신히 다독다독 흐르던 강물에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이 일어났던 것이다. 오래 전, 죽음을 준비하던 엄마를 ‘골동품’이라고 쓴 나의 졸시가 있다.
 
  반백 년 함께 산 어머니의 재봉틀이 문밖에 놓여 있다. 야야, 저거 버려야 쓰겄다. 다리 심 빠져 인제 암것두 못햐. 바람 나 찢어질 대로 찢어진 마흔 살 아버지를 꿰매고, 외아들 역성들기에 신바람 난 할머니를 꿰매고, 엉킨 북실 풀어 다섯 남매 꿰매던 시간을 이제 버리려 하신다.
  손재주가 많으먼 겪을 일이 많다넌디 저눔 지지배럴 어뜩하먼 좋아! 어머닌 안방에서 헝겊 쪼가릴 갖고 노는 어린 나를 내쫓곤 하셨다. 저 재봉틀 내가 가져갈까? 니가 뭐 꼬맬 게 있다구. 고되다, 아서라 아서. 더 이상 꿰맬 수조차 없이 낡은 당신을 이제 버리려 하신다.
       ____「골동품」(세 번째 졸시집 <새가 날아간 자리>)에서
 
  죽어야지 죽어야 하면서도 약을 하루에 한주먹씩 먹던 엄마, 죽고 싶으면 약 먹지 말라고 모진 말을 하던 나도 이제 엄마처럼 되어가고 있다. 이미 몇 년 전보다 약을 자주 사 먹고 병원도 자주 다니고 있으니, 이렇게 흘러가다 어느 굽이에선가 엄마처럼 멈춰서겠지.
  하늘 높고 가을볕 눈부시던 2014년 9월 17일, 남동생이 또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동생의 영정을 앞에 두고 절을 했다. 망자가 우선이므로 누나도 절을 해야 한다고 장례사가 말했다. 엄마가 일으킨 파문이 잔잔해지기도 전이니 눈물보가 또 터졌다. 눈물은 도대체 어디서 샘솟듯 흘러나오는 건지, 혹시 피인가? 엄마랑 이별할 때보다 더 많이 울었다.
  비슷한 표정의 사진을 찾아 동생과 나란히 놓고 보니 못난 코가 닮았고 입이 턱이 눈썹도 닮았다. 우린 똑같이 카메라 앞에서 환히 웃질 못하고 왜 반만 웃었을까. 어려서는 5남매 중 이 동생과 내가 엄마를 제일 많이 닮고 나머진 아버지를 닮았다고 했다. 속이 다 썩어 문드러져 없어진 줄 알았는데 나에게 썩을 속이 남아있었다니……, 속이 또 푹푹 썩었다. 암이라니, 그것도 재발하다니, 정말 속수무책이었다. 말로만 듣던 암이 건강하던 동생을 참혹하게 주저앉혀 결국 끝을 보게 만들었다. 피붙이들이 풍경 뒤로 이렇게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이 또한 살아있으므로 만나는 복병들이다.
  옛날이야기 속에는 죽음의 순서가 있었다.
  “까마귀가 염라대왕의 저승사자 역할을 할 때였다. 하루는 까마귀가 저승으로 데려갈 사람의 명부를 물고 가는데, 한 마을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배가 고팠던 참이라 자신의 일을 잊고 마을로 내려가 정신없이 허기진 배를 채우고 저승으로 돌아갔다. 막 저승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할 때서야 잔칫집에 놓고 온 명부 생각이 났다. 까마귀는 먼 길을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명부에 적힌 사람의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아 평소 자기가 알고 있던 사람의 이름을 적어 염라대왕에게 올렸다. 그래서 정작 잡혀갈 사람이 아닌 엉뚱한 사람이 사자의 명부에 올라 저승으로 가게 되었다.”
  까마귀의 실수로,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죽는 순서는 없어졌다는 것이다. 까마귀 고기를 먹으면 건망증이 생긴다는 말도, 죽음과 관련지어 흉조(凶鳥)로 생각하는 이유도 위 이야기에서 출발된 듯하다. 염라대왕이나 저승이나 저승사자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불시에 다가오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위안 받기 위해 심약한 인간이 지어낸 말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종교적 잣대는 복잡하고 끝이 없다. 하여 나는 단순명료하게 생물학적인 관점으로만 생각한다.
  2014년 11월 EBS 다큐프라임 생사탐구대기획 <Death>에서, 미국 스키드모어대 심리학과 교수 ‘셀던 솔로몬’과 미시간대 심리학과 박사 ‘윌리엄 초픽’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죠.” “죽음은 사람들이 피하는 주제지만 흥미롭죠. 사람들은 평생 죽음을 마주하고 살아야 해요.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죠.”

바이올렛 나스터츔 인파첸스 베고니아
화려한 꽃들이 비빔밥 위에 얹혀 있다
나스터츔 한 송이 집어 우적우적 씹는다
꽃밥 파는 허브농장이 정글 같다
현기증이 살짝 지나간다
내가 먹은 꽃이 어디 이뿐인가
세상천지가 꽃밭이다
웃음도 꽃이고 상처도 노여움도 꽃이다
그대도 나도 피었다 지는 꽃이다
나는 바이올렛보다 더 화려한 꽃을
먹어치운 적 있다
코앞에 수없이 피고 지는 꽃들을
눈도 꿈쩍 않고 다 먹었다
이제 나만 먹어치우면 된다
나를 내가 먹는 건 재미없는 일
새나 벌레나 들개나 사람이나
맛있게 먹어줄 그늘을 찾는 게
마지막 숙제다
       ____「꽃밭에서」 네 번째 졸시집 <미끼>에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산 사람이 만나는 죽음은 슬프고 쓸쓸하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오죽하면 삶을 고해(苦海)라 했겠는가.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 차례가 반드시 올 것이다. 굽이굽이 모퉁이를 돌다 뚝 멈추어 서게 될 그날이 고통 없는 고요한 그늘이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길눈이 장애인 수준으로 어둡다. 열 번쯤은 지나가야 여기가 그 길이구나 알아차린다. 좌우 구별을 얼른 못하여 ‘좌향좌 우향우’ 때문에 학창시절 곤혹을 치르던 기억도 있다. 아직도 너트(nut)나 병뚜껑을 어느 쪽으로 돌려야 풀리는지 몰라 힘껏 조여 놓고 안 풀려 가끔 어려움을 겪는다. 이사를 자주 다니던 시절 꼭 한 번씩은 집을 못 찾아 헤맸고, 왼쪽을 가리키며 우회전하라고 했다가 친구에게 한소리 들은 적도 있다. 그리고 시간이나 거리 개념도 없다. 방향감각조차 없어 동서남북 구별도 못한다. 해가 중천에 있으면 어느 쪽에서 해가 떴는지 도무지 몰라, 가는 장소마다 달이 뜨거나 해가 지는 방향이 바뀌니 내 딴에는 골머리가 아프다. 이 어리바리함 때문에 가끔 고생은 하지만 고민하지 않는다. 애초 이렇게 태어났으니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만, 무궁무진(無窮無盡) 헤맬 것 같은 이 여정도 언젠가, 확실히, 끝나는 날이 올 터이므로. ◈


<시와정신> 2015.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