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뱀과 나와
황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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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이야기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뱀이 징그럽긴 해도 겁먹지 않았다. 물린 적 없고 물린 사람도 못 보았기 때문에 산길이나 신작로를 가다 뱀을 만나도 도망가지 않고 구경했다. 학교 오가는 길에 뱀이 나타나면 남자친구 중 하나가 돌을 던졌다. 그러면 여러 명이 돌멩이 하나씩만 던져도 예닐곱 방은 맞으니 죽기도 했다. 할머니는 이웃 아저씨가 잡아 가져다준 뱀을 허리 아픈 아버지에게 약으로 고아주곤 했다. 하여 친구들과 함께 돌을 던져 죽인 뱀을 막대기에 걸쳐 들고 집에 간 적도 있다.
이삼십 대가 옥신각신 지나가고 사십 대 초반에 우환이 덮쳐들었다. 현실이 꿈만 같았고 자각하지 못한 어떤 일로 천벌을 받은 건지, 견디기 힘든 나를 극도로 혐오했다. 사람으로 살고는 있는 건지, 어쩌면 내가 징그러운 뱀일지도 모른다는 상상 속에 나는 나를 의심하고 자학하며 매일 밤을 낭비했다.
뱀이 침 뱉어 놓는다는 뱀딸기, 먹으면 한밤중 뱀이 기어들어 뱀 새끼 밴다 했다. 징그러운 뱀이 된다 했다. 할머니 말 믿기지 않아 빨갛게 익은 뱀딸기 따먹고 말았다. 맛대가리 없는 그것을 몰래 꿀떡 삼켜버리고 나는 서서히, 느물느물, 뱀이 되어갔다. 똬리 틀고 앉아 주변 사람을 날름날름 약 올렸다. 이 땅을 내 땅이라고 우기며 독을 품어댔다. 새끼까지 잡아먹고 어둔 골방에 숨어 혼자 잠들곤 했다. 흐린 날이면 먹잇감을 찾아 시장바닥을 어슬렁거렸다. 사람으로 둔갑한 나를 아직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__「뱀딸기 전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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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나 가족이 슬퍼하는 내게 던지는 말 중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사는 건 다 그래.’, ‘더한 사람도 있어.’, ‘그만 잊어.’ 등이었다. 더해서 어떤 이는 내 상황에 논리적 잣대를 들이대거나 충고를 서슴지 않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모르는 건지, 위로한답시고 맥락 없이 던지는 말에 수없이 상처를 받았다. 하여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부모를 잃으면 천붕지괴(天崩地壞)라 했고 참척(慘慽)의 아픔은 천붕지괴보다 더하다 했는데, 본래 인간은 이기적이지만 그래도 생각하고 궁리하고 판단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있지 않은가. 시도 때도 없이 상처받는 나를 위해 나는 심리상담사가 하는 공부를 시작했다. 쉬운 듯하지만 모두가 하지 않거나 하기 어려운 약 같은 위로의 말 한마디는 진심으로 건네는 ‘ㅇㅇ구나.’였다. 아프구나, 힘들구나, 슬프구나 등등 인정하고 귀담아 들어주면 되는 거였다. 박노해 시인은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했다. 다 죽어가는 내게 그들이 반대말을 던졌다는 걸 알아버린 날 ‘사람만이 절망’이라고 메모했다.
최근의 일이다. 벼르고 벼르다 만난 고향 친구가 간신히 감추고 사는 나의 상처를 슬쩍 들여다보는 듯한 말을 했다. 안부를 묻고 싶었겠지만 나를 나락으로 몰아붙였던 기억을 소환시켰다. 지금도 여전히 내가 울며불며 지낼 거라 생각한 모양,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도려내고 싶은 그때 그 상처가 그 친구와 나 사이를 비집고 올라와 화가 부글부글 치밀었다. 쇼펜하우어는 ‘우리를 기쁘게 하는 일 중 하나는 친구가 겪고 있는 불행과 슬픔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일’이라고 우정의 뒷면을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 친구의 전화번호를 지우며 절망했다.
살아있는 한 아물지 않을 상처, 그러함에도 현실을 도피 못 한 채 사람 시늉을 하며 여태 살아있다. 하지만 이제 괜찮다. 사람이든 사람 아니든 본래 없었던 존재이니 내 아이가 돌아가듯 오래지 않아 나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뱀딸기도 처음엔 달콤했대 이쁘기까지 한 그것이 잘난 체를 넘치게 해서 神이 단맛만 빼앗고 뱀 곁에 뱀처럼 기어 다니게 만들어놓았다는 거야
뱀이 침 발라 놓았다는 그걸 할머니 몰래 따먹었다고 했잖아 맛을 잃은 뱀딸기가 복수한 거야 저를 탐한 어린 내게 덤터기를 씌운 거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람 시늉을 이토록 오래 할 수 있겠어 이십 년 전에도 말했지 사람으로 둔갑한 나를 아무도 눈치 못 챘다고
모퉁이 들어서야 빛나는 이 비늘, 밤이면
세상을 날면들면, 훨훨 춤추는 긴 목
아직도 모르겠어?
내 눈, 똑바로 보라니까
__「蛇足之夢」(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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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가을이었다. 고요한 시골 한 창작집필실에서 1인 1실 숙식 제공을 받아가며 문인 일곱 명과 함께 창작에 열중하고 있었다. 비탈진 산 끄트머리 축대 아래 커다란 빈 화분이 두 개 놓여있고 그 앞에 내 숙소가 있었다. 시월이 되니 산에서 내려온 낙엽이 뒹굴고 키 큰 잡풀 몇 포기가 화분을 포위하고 있었다.
소슬바람 탓에 날갯짓이 어설퍼진 잠자리가 풀잎에 앉아 쉬는 한가한 오후였다. 방문 앞 화분 주변에 몰려있는 낙엽과 풀을 제거하기로 했다. 화분 하나를 번쩍 들어 옮겨놓고 보니 그곳에 뱀이 똬리를 틀고 숨어 있었다. 벌써 동면에 든 건지 놀란 건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울긋불긋 무늬가 없으니 독사이거나 구렁이 새끼였을 것이다. 넋 놓고 보고 있는데 꼬리를 옴죽거렸다. 활짝 열어놓은 방으로 기어들거나 뒤란 쓰레기 모아놓은 곳으로 숨어버리면 어쩌나 심장이 콩콩 뛰었다. 진퇴양난 피차일반, 달리 방법이 없었다. 가까이 있는 벽돌을 집어 들었다.
한 발짝 앞에 있는 뱀을 향해 벽돌을 툭 던졌다. 이럴 수가, 똬리 튼 뱀 위에 벽돌이 날름 올라앉았다. 빛나는 햇살이 뱀을 누른 벽돌 위로 왈칵 쏟아져 내렸다. 폭발할 것 같은 햇살을 꾹 밟고 서서 누구든 와서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촌장이 부리나케 뛰어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곧 뒤란 가득 어둠이 몰려왔다. 빛과 뱀과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거니
숨을 멈추고 우린 서로를 노려보았다
피할 수 없는 찰나가 천년이듯 흐르고 있었다
나를 죽일 수 있는 일생일대 기회가 온 거다
사람으로 변신한 내가 뱀으로 변신한 내게
힘껏 벽돌을 집어 던졌다 명중했다
한 뼘쯤 비어져 나온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수시로 나를 흔들어대던, 저
징그러운 슬픔
오른발에 온 힘을 실어 꾸욱 밟았다
good-by! 나의 슬픔, 뱀이던 나여
나는 자유다
살생을 거들던 그가 축 늘어진 나를 막대기에 걸쳐 들고 닭장 쪽으로 총총 사라졌다
__「살생의 기억」(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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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자유로워졌을까?
2022년 소한이 바로 지난 1월 8일, 십 년 살던 곳에서 넓은 둥지로 이사했다. 경사진 보문산자락에 지은 산방(山房) 같은 소규모아파트 맨 위층인 내 집, 살아 머물 마지막 둥지가 될지도 모른다. 식탁에 앉아 창밖을 보면 앞 동 지붕만 보이고 사람 사는 모습은 안 보인다. 조금 보이는 지붕도 안 보이도록 한지 무늬 시트로 가렸다. 그렇게 다시 살 준비를 마쳤다. 유리창만 한 하늘엔 온종일 구름이 머물다 간다. 그 하늘은 내 거라고 우기며 차를 마신다. 피뢰침 꼭대기에선 아침마다 산비둘기가 깃털을 다듬고 까마귀와 까치가 자리다툼을 하는가 하면 딱새가 영롱한 소리로 한낮을 지저귄다. 정문 앞 산성동성당 마당에는 커다란 예수상이 있어 산밑 그늘을 환하게 비춰준다. 길눈이 어두운 탓에 겨울이 다 지나도록 비슷비슷한 골목골목을 빙빙 돌기도 하며 새로운 동네를 익히느라 싸돌아다녔다. 꼬불꼬불 경사진 좁은 길에 눈이 펑펑 내리니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나와 집 앞을 쓸기 시작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본 정겨운 풍경이었다. 솔부엉이가 여름 내내 밤도와 우는 낯선 곳이 일 년이 지나서야 내 둥지 같았다.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불행을 자초할 기회가 많아진다는데 내게 주어진 불행이나 고통의 총량을 채운 것일까? 잊히지 않는 나쁜 기억이 수시로 출렁거리지만 사는 동안 요즘처럼 일상이 평온한 적이 있었나 싶다. 하여 누구를 만날 생각 없이 TV도 없이 혼자서 잘 논다. 힘들다는 생각만 들지 않는다면 잘 사는 것, 7년 전 손 놓은 토우에 다시 재미를 붙였다. 조물조물 손끝 가는 대로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맘에 안 들면 뭉개고 다시 또다시 빚으며 진흙과 나뿐인 적막을 알뜰하게 소비하고 있다.
볼테르는 자기 나이에 상응하는 정신을 갖고 있지 않은 자는 자기 나이에 상응하는 여러 재난을 당하게 된다고 했다. 이순(耳順)은 되었을 문우가 띄어쓰기도 없이 정겨움 넘치는 안부 문자메시지를 오랜만에 보내왔다. 울노인네잘계실까몰라. 아직 대놓고 내게 노인네라고 부른 이가 없었기 때문에 어이는 없었지만 맞는 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노인이 되었다. 이제 의연하게 지워질 준비를 해야 한다. 괴로움은 적극적인 마음에서 비롯되고 즐거움은 소극적인 마음에서 만들어진다는데, 건강만 유지된다면 요즘처럼 소극적으로 나머지를 소일하다 지워져도 괜찮겠다. 이제 뱀을, 아니 나였던 뱀을, 아니아니 뱀이었던 나를 아주 잊기로 한다.
쥐로 살거나 개미로 살거나 뭐가 다르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의심하며
사람 아니면 어쩌나 가슴을 쓸어내린 적 있지
그런 때도 있었지
내 속에 들어앉은 나를 오래 모른척했어
내 눈을 봐, 뭐가 보이니
혹시 벽돌에 눌린 뱀?
그랬지, 한때
사람 아닌 적 있었지
내가 나를 꾸욱 밟아
죽인 적 있지
그래서 말인데, 솔직히 말해봐
나는 어디에 쓰는 도구니
나는 왜 나를 지울 수 없는 거니
__그림자놀이(2022)
(2023)
___<학산문학>, 2024.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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