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욕을 하고 싶다 외 1편/주용일

섬지기__황희순 2006. 1. 30. 17:46

 

 

욕을 하고 싶다

 

주용일

 

 

 


아이가 욕을 한다
에이 놈아 개똥꼬야  
아이 몸에서 욕이 새처럼 방생된다
욕이 욕답기 위해서는 소리와 함께
마음도 저렇게 몸을 빠져나가야 하리라
너무 자연스러워
나도 따라 중얼거려본다
소리가 목구멍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아이들의 맑은 눈빛은
제 몸 속의 욕을 날마다 저리
허공으로 날려보내기 때문은 아닐까
한세상 살아오며
내 속에 쌓인 무수한 욕
개 같은, 엿 같은
가래침처럼 칵 뱉어버리고 싶은 것들을
나는 방생하지 못하고 살았다
욕으로 터져 나오지 못한 소리,
불순한 것들로 꽉 찬
내 몸은 끈끈한 욕덩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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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의 쓸모

 

주용일

 

 

 

 

 

어스름녘,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어깨에 얹혀 오는

옆 사람의 혼곤한 머리,

나는 슬그머니 어깨를 내어준다

항상 허세만 부리던 내 어깨가

오랜만에 제대로 쓰였다

그래, 우리가 세상을 함께 산다는 건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피로한 머리를 기댄다는 것 아니겠느냐

서로의 따뜻한 위로가 된다는 것 아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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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立春 그 이후․1

주용일



맞으면 그대로 약이 된다는 봄비가 온다

얼음장 하늘 찢으며 쏟아지는 빗소리의 싱싱한 음계,

겨우내 야윈 땅은 제 몸 깊숙이 빗물을 품는다

뿌리며 마음의 생장점에 발화 재촉하며

마른 겨울잠을 씻어내는 빗물이 끓는다

봄비에 젖지 않는 것들은 영원히 잠깨지 못하리

사통팔달 바람의 묵언 들판을 가로지르고

허물벗이 배암 초록눈박이 사슴 은행목 잔 가지도

펄럭이는 책장소리에 눈뜨고 귀기울인다

지금 세례받는 목숨들은 생의 내력을 더듬으며

동동거리는 종아리걸음으로 성급히 내닫는다

보았는가, 푸른 물 혈관 타고 기어오르던 시간 이래로

우리 몸 속 피를 덥히는 태양과 바람의 쉼없는 노동,

빛과 어둠이 굴리는 수레바퀴 틈에 끼어

달아나도 털어낼 수 없는 꽃 피고 싶은 마음

그 죄의 일곱 빛깔 무지개를 기다리며 봄비를 맞는다

실눈 뜨면 눈에 드는 아련한 꽃대의 흔들림,

겨울잠 털며 털며 가슴 깊이 묻어넣은 씨앗 하나

어둠 안에서 올올 푸른빛으로 돋아날 대지 위로

맞으면 저절로 봄이 되는 약비가 온다



 

   無花果

    주용일 



안으로 숨어든 젖꼭지,

함몰 유두를 아느냐

너를 젖먹일 수 없어

몸속으로 꽃 피우다 보니

뿌리까지 둥근 유선이 열렸다

가지에 잎에 도는 흰 젖,

내가 나를 젖먹이는 일만큼

슬픈 일이 지상 어디에 있겠느냐

바깥으로 젖꼭지 밀어내지 못하여

내 젖꼭지는 안으로 자란다

내 꽃은 몸속에 숨어서 핀다



 

*주용일:충북 영동 출생/1994, '현대문학' 등단/시집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듯하다'


시집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듯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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