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물의 길을 보며/이승하

섬지기__황희순 2006. 11. 9. 21:50
물의 길을 보며
   ㅡ박상언에게

 이승하

 

 

  파르라니 머리 깎은 아내 데리고

  홍천강 언덕에 차 대놓고 앉아서

  노을이 질 때까지 넋 놓고 강을 본다

  저 강은 저 가고 싶은 대로 가는가

  홍수 나면 화난 듯이

  가뭄 들면 기진한 듯이

  흘러온 강이기에 또 흘러갈 것인가


 
  둘러선 저 산들 낯붉히는 가을인데

  네 번째의 항암치료에도 기약이 없다

  한마디도 해줄 말이 없어 바라보는 강

  겨울이 와서 저 강이 얼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설중매가 피어날까

  강변에 화들짝 산수유가 피어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은 저의 길을 갈까


 
  "저 강은 청평호에서 수명을 다하나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기에 물이듯이

  흐르고 흘러 바다까지 가고

  하늘로 올라가 비도 되어 내리겠지

  물이 모이면 길을 내어 흐르는데

  그대 목숨의 길은 이 강 언덕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

  어느덧 은하수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