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담쟁이 덩굴의 독법/나혜경

섬지기__황희순 2006. 1. 30. 16:38

담쟁이덩굴의 독법

 

나혜경

 

 

 

 

손끝으로 점자를 읽는 맹인이 저랬던가

붉은 벽돌을 완독해 보겠다고

지문이 닳도록 아픈 독법으로 기어오른다

한번에 다 읽지는 못하고

지난해 읽다만 곳이 어디였더라

매번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다 보면 여러 번 손 닿은 곳은

달달 외우기도 하겠다

세상을 등지고 읽기에 집중하는 동안

내가 그랬듯이 등 뒤 세상은 점점 멀어져

올려다보기에도 아찔한 거리다

푸른 손끝에 피멍이 들고 시들어버릴 때쯤엔

다음 구절이 궁금하여도

그쯤에선 책을 덮어야겠지

아픔도 씻은 듯 가시는 새봄이 오면

지붕까지는 독파해 볼 양으로

맨 처음부터 다시 더듬어 읽기 시작하겠지

 

 

*나혜경:1992, '시와의식'으로 문단활동 시작/시집 '무궁화 너는 좋겠다' 등

 

<시와정신, 2005,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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