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의 기록
황희순
; 카를로 알베르트 거리 6번지를 나선 니체는 분노로 미쳐 채찍을 휘두르는 마부를 말리다가 말의 목을 휘감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후 이틀을 누워있던 니체는, “어머니 전 바보였어요.” 마지막 말을 웅얼거리고 10년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누워있었다.
첫째 날 ; (바람은 여전히 한 방향에서 광폭하게 땅을 휩쓴다.) 나무좀 갉는 소리 들리니? 58년간 하루도 안 들은 날이 없어.
둘째 날 ; 술 한 병 주겠나? 어떻게 되어가긴, 모든 것은 파멸로 향해 가고 있어. 인간이 인간에게 내린 심판인 거지. 물론 하느님도 관여하시긴 했지. 지금껏 가장 끔찍한 일을 벌이신 게 분명해.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 가진 게 모두 비열하고 교만한 싸움 끝에 얻은 것이니 나빠지는 거야. 몇 세기 동안 계속 그들이 무엇을 만지든 만지는 것마다 모두 나빠지고 있어. 하늘은 물론이고 우리의 꿈조차도 그들 손아귀에 있지. 순간도 무한한 침묵도 그들 것이야. 고귀하고 탁월한 자들은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네. 어떤 신도 없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거지. 믿고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법, 이 세상엔 어떤 신도 없다는 걸 그들은 깨달은 거야. 그러니까 그 순간은 그들이 소멸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지.
그만 하고 가보게, 다 헛소리군.
셋째 날 ; (long… long… take)
넷째 날 ; 우물이 말랐어요. (물을 찾아 떠나지만,)
다섯째 날 ; (다시 그 자리. 폭풍이 멈췄다. 말집 문이 굳게 닫히고 불씨도 꺼졌다. 웅크린 그의 몸에 정적이 내려앉는다.) 잠이나 자자. 내일 다시 해보자.
여섯째 날 ; 먹어, 먹어야 해. (생감자 베어 무는 소리가 딱 한 번, 뇌성같이 울린다. 그리고 …………….)
; 패배하고 승리하고 패배하고 승리하고, 그리고 이 세상엔 어떤 변화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야. 그래, 다 헛소리였어.
*위 시는 영화 <토리노의 말> 대사 재구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