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쓰기

암호들

섬지기__황희순 2018. 9. 3. 14:05


 암호들


  황희순


난도망옮겼습니다목에작별연락주시기바랍니다그녀가시간이되면일일도베트남음식즐길수있다초대했기를기대합니다영광것으로알려져그제공가족의건강과그행복을기원합니다

__베트남에친구 노퐁히엔



  평생 헤아려도 모자랄 하늘을 별을 기억의 가지를, 온몸으로 꿈틀거리다 끝날 게 뻔한 소통불가 사랑을 연민을, 쌀국수 먹으러 가자던 약속을, 일당 8만 원 좇아 도망치듯 가버린 이주노동자 등짐 무게를, 부자가 되고 싶은 스물여덟 살 청년의 소원을, 혈세낭비 외유에 신명 난 위정자 뒤통수를, 날개도 없는 전직 대통령을 부엉이바위에서 날아가게 만든 이 나라를, 꽃 같은 아이 수백 명을 수장시키고도 울지 않는 잔인한 권력을, 오렌지만 한 태양을 초속 30Km로 달리는 모래알만 한 지구 대한민국 대전에 잠시 정박한 우주 미립자 나를 또 당신을, 누가 간단히 풀어 읽을 수 있겠는가.

  히엔, 그래도 고개 숙이지 마라. 내 형제도 오래전 너희처럼 사막으로 품팔이 간 적 있다.


  *보증 서달라는 손을 뿌리친 다음 날, 현관문에 띄어쓰기 없는 히엔의 편지가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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