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쓰기

덫에 걸린

섬지기__황희순 2018. 9. 3. 13:54


덫에 걸린


황희순



土.

기다려도 신호등이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장 난 거라며 마구 건너간다 빨간불이 한 여자만 노려본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日.

이승에서 사라진 목소리만 궁금하다 입 다물고 귀 막고 눈 감아도 길고 긴 하루 또 하루, 살아있는 건 모두 시끄럽다


月.

와글와글 좀 슬고 있는 머리, 방충악취제거 나프탈렌을 머리맡에 걸어놓았다 삼키다 만 말도 꺼내 곁에 두고


火.

이십 년을 하루같이 어깨에 내려앉은 그림자, 백년이 가도 꿈쩍 않을 어둠 한 채


水.

소금 뿌린 미꾸라지처럼 발버둥치는 풍경에 손 슬쩍 밀어 넣으면 미끈덩 잡히는 식어버린 심장, 이 통증은 무엇의 후렴구일까


木.

벽시계 탁상시계 손목시계 차례로 멈췄다 말이 멈췄다 주고받던 눈길조차 멈췄다 숨만 멈추면 완성될 그림 한 폭


金.

사람을 쏜 물쐐기는 물꼬에서 그가 죽어 떠내려 오길 기다린단다 물쐐기에 쏘인 건가, 왜 자꾸 무릎이 꺾이나


土.

뛰어가야 하는데 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 허둥대다 깨어보니 꿈이다 그만 쉬어야지 정신 차려야지 육십 년을 개꿈 꾸고 아직도 꿈꿈


日.

목덜미 훔켜쥔 레커가 낯익은 골목을 빠져 나간다 돌아볼 겨를 없이 폐차장 향해 가고 있다 그들은 지옥을 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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