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쓰기

우화

섬지기__황희순 2010. 11. 18. 19:50

 

 

 


  우화

   황희순



   심술패기 콩새는 손톱이 무기인 그의 주머니 속에 쏙 들앉아 있었다. 그가 잠들면 살금살금 기어 나와 뾰쪽한 부리로 길고 뾰쪽한 손톱을 더 뾰쪽하게 벼려놓았다. 콩새가 재미삼아 벼려놓은 손톱을 뾰쪽하게 세워가며 그는 승승장구했다. 그가 콩새를 본체만체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런 날이면 조금씩 커지는 간을 만지작거리며 주머니 속에서 혼자 놀았다. 그가 잠들면 손톱은 물론 손톱뿌리까지 살금살금 쪼아 먹기 시작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는 헛대포를 마구 쏘아댔다. 재미난 구경거리였다. 그가 뿌리까지 뽑힌 뭉툭해진 손을 알아차린 건 가려운 뒤통수를 긁으려는 순간이었다. 누구 짓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부리가 더 뾰쪽해진 콩새는 배 밖으로 살짝 삐져나온 간을 욱여넣으며 길길이 뛰는 그를 탈출했다. 그의 손톱은 뿌리가 생겼을까. 무엇으로 늙어가는 세상을 할퀴며 살까.

--(시와경계, 2010.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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