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흐림
황희순
그날 이후, 낮은 길고 거울은 조금씩 낡아가고
네가 사라진 곳으로만 바람이 분다, 그곳으로 봄이 가고 또 가고
라일락꽃 피면 가슴을 뚫고 비어져 나오는 심장, 꾹꾹 눌러도 비죽비죽 비어져 나오고 또 나오고
잊으면 안 되는 너를 때때로 잊고도 사는 나의 정체가 미심쩍어 기억 한 모퉁이 뭉텅 베어 들여다보니, 사이사이 노랑나비였다가 고추잠자리였다가
나비였던 나를 잠자리였던 나를 어미였던 나를 덜컥 늙어버린 나를 네가, 알아볼 수 있을까
너 있는 곳은 얼마나 가까운 거니
__<불교와 문학> 2023.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