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패러디/정끝별

섬지기__황희순 2018. 8. 10. 10:01

패러디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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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하면 영향・모방・표절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리거나, 독창성・역사성이 결여된 방법적 유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패러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았던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의 경우 패러디는 1990년대 이후 저자(주체)의 죽음, 장르 혼합, 경계 해체, 키치 따위와 함께 유희성・대중성・경박성・일회성이라는 징후를 띠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 기법으로 부상했다. 곱지 않았던 시선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는 데서 출발한다. 설상가상으로 패러디의 유사형식인 패스티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포스트모던 기법인가, 표절인가’라는 논쟁 속에서 촉발되어, 잘 해봐야 모방 그렇지 않으면 표절이라는 불명예스런 오해를 받았던 것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논쟁 : 1991년 말 미술대전 입상작인 조강원의 <또 다른 꿈>과 1992년 초 작가세계 문학상 수장작인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둘러싼 표절논쟁이 신문지상에 가시화되면서 패러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촉발되었다.)

패러디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서양사조의 유입과 더불어 회자되었으나 단지 서양문화전통에서만 언급될 수 있는 표현양식은 아니다. 문화의 수용 및 창작의 근본원리서의 패러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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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텍스트를 끌어다 쓰는 작업을 극단적으로 진행할 때, 창작 주체에게 요구되는 작가의식이나 원본성・창조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와해되기 십상이다. 패스티시(pastiche)입지점은 여기에 마련된다. 비판력 없는 닮음 혹은 모장을 특징으로 한다는 것이 패스티시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다. 한 텍스트뿐 아니라 수많은 텍스트로부터의 모장이자 평면적으로 흡수되는 저항 없는 ‘닮음’이기에, 비판성・풍자성・동기성이 결여되고 상대적으로 유희적 기능이 강하게 부각된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조건 속에서 양산되는 패스티시는 패러디와 상당 부분 맞물린다. 패스티시에 대한 문학적 기능성에 대한 평가는 논자마다 다르고 논자에 따라서는 패스티시를 기존의 패러디와 구별하기도 한다.

제임슨은 풍자적 동기가 없는 패스티시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패스티시야말로 주체가 소멸한 세계를 재현할 뿐이기에 풍자적 동기가 거세된 ‘중성모방’, 짜깁기로서의 ‘혼성모방’에 불과한 것이라고 파악한다. 그러나 제임슨이 문제 삼는 ‘풍자적 동기’가 원텍스트에 대한 것인지 현실에 대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 원텍스트에 대한 풍자적 동기는 없되, 그 텍스트가 놓인/놓일 현실적 문맥의 차이에 초점을 맞춰 당대 현실을 풍자하는 패스티시의 예는 우리 현대시에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풍자적 동기의 유무’ 또한 자의적으로 해설될 소지를 안고 있다. 실제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양산되는 패러디텍스트들은 패스티시와 그 경게를 넘나들거나, 문학적 기능성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한 패스티시 작품들도 많다. 패스티시를 포스토더니즘 패러디의 한 경향으로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다. (제임슨이 패스티시를 부정적으로 파악한 데 반해 이승훈은 패스티시가 가진 미학적 가능성을 주장한다.「패스티시의 미학」, 『포스트모더니즘 시론』/「혼성모방의 문화적 논리」, 『모더니즘 시론』)

패러디는 콜라주(collage)・몽타주(montage)・오마주(hommage)와도 경계를 넘나든다. 미술이나 영화에서 비롯된 이런 기법들이 문학에 전용될 경우, 흩어져 있는 단어나 문장, 문단의 단편들을 하나의 텍스트로 조립・구성하는 표현형식을 일컫는다. 이러한 짜깁기나 모자이크, 혹은 재편집의 방식은 서로 다른 단편들을 나란히 조합해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두 텍스트를 동시에 결합시키는 동시성의 기법에 해당하며, 습관적인 독서에 제동을 걸고 예상 외의 새로운 표현과 효과를 낳는다. 그런 점에서 콜라주・몽타주・오마주는 패스티시적 특성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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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대상

1. 우리의 전통 장르(작품)을 원텍스트로 하는 경우 : 신화, 설화, 속담, 고전소설 등

2. 비문학적 장르(작품)을 원텍스트로 하는 경우 : 사진, 그림, 광고, 영화감상

3. 서구문학적 작품을 원텍스트로 하는 경우 : 성경, 서구 유명 작품

4. 우리 현대시를 원텍스트로 사는 경우 : 앞선 동시대 시인들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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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대상에 대한 패러디스트의 태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원텍스트를 모방적으로 인용하기(모방적 패러디)

2. 원텍스트를 비틀어 인용하기(풍자・비판적 패러디)

3. 원텍스트를 짜깁기하기(혼성모방적 패러디)

 

_____시인수업 05 <패러디> 정끝별(모악, 2017)에서 


**정끝별 : 1988년 <문학사상> 시 등단/ 1994년 <동아일보> 평론 당선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외/시론 <패러디 시학>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