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문 외 1편
손현숙
회전문은 한 방향을 고집한다
너는 자꾸만 눈을 깜빡거리고 나는 괴고리를 붙였다 뗐다 한다
씹던 껌만 씹고, 다니던 길만 다니고, 쓰던 안경만 쓰고, 잡는
연필만 잡고, 타는 옻만 타고, 빨단 사탕만 빨고, 신던 신만 신고.....
입구와 출구를 번갈아 놓치기도 하면서
우리들의 하루는 무사하다, 할까?
도돌이표처럼 입꼬리 싹, 올린다
바람은 언제 꼬리와 꼬리
맞잡고 동그랗게 휘파람 소리를 내는 걸까
들고나는 사람들 좀 봐
입술 꼭 다물고 발바닥이 발바닥을 따라가네
비극과 희극은 간발의 차이, 자전처럼
닫혀야 열리는 반복은
어이없이 풀려버렸던 새끼손가락의 약속이다
밀면 밀리고 설 때 서야 하는 순간,을 놓아버리면
너는 헐렁하고 나는 정전기처럼 사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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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글라이딩
낙하산과 헬멧과 하네스를 꾸려
사내는 한발 한발 정광산 꼭대기에 올랐으리라
무작정 경계를 넘어가고 싶은 저 속내
물오리처럼 종종걸음으로 공기를 덥히고
헛발질로 허공에 발바닥을 새긴다
날개 끝까지 핏줄을 세워
지금은 비상하는 새의 시간
시계가 멈춘 세상에는 더 이상 집은 없다
바람의 등을 타고 낙하의 방향이 조정된다
이마에 구름을 찍고 깜빡, 하늘이 지나간다
온몸으로 사방을 밀면서 문을 열다 보면
바닥이 하늘로 빙글, 돈다
새점을 치던 발자국들 모두 어디에 풀어놓았을까
바람이 몸을 뒤집자 급하게 몸을 내리는
하늘이 한 점으로 정지했다
달팽이처럼 집을 떠메고 떠났던 사람
땅을 박차고 허공 속으로 힘껏 몸을 날렸지만
발바닥은 땅 위에 그림자부터 심는다
우습지 않은가, 중력처럼 집으로 끌려가는 발바닥
거기서부터 하늘은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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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숙 시집 <일부의 사생활>에서
**손현숙 시인 : 서울 출생/1999년 '현대시학' 등단/시집 <너를 훔치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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