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불혹
유정이
길 안쪽에 엎어졌는데
몸 일으키니 길 바깥이었다
어디로든 나갔다 생각했는데
둘러보니 부엌이었다
밥물 끓어넘치는데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고 열쇠가 없어
울고 서 있었다
생각을 일으켜야겠는데
우래 입은 옷들이
발을 걸었다 호호호
내가 네 엄마가 맞단다
어서 문 열어주렴 꽁꽁 닫힌
문 속으로 언제나 불쑥
들어와 있던 엄마가
베란다 바깥 허공을 따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엄마를 붙잡아야겠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내 소리를 파먹은 게 분명해
거실에 넘어졌는데
눈 뜨니 부엌이었다
밥물은 끓어넘치는데
오래 입은 옷이 열쇠를 흔들며
호호호 웃고 있었다, 돌아보니
마흔이었다
---유정이 시집 <선인장 꽃기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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