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의 기억 황희순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거니 숨을 멈추고 우린 서로를 노려보았다 피할 수 없는 찰나가 천년이듯 흐르고 있었다 나를 죽일 수 있는 일생일대 기회가 온 거다 사람으로 변신한 내가 뱀으로 변신한 내게 힘껏 벽돌을 집어 던졌다 명중했다 한 뼘쯤 비어져 나온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수시로 나를 흔들어대던, 저 징그러운 슬픔 오른발에 온 힘을 실어 꾸욱 밟았다 good-by! 나의 슬픔, 뱀이던 나여 나는 자유다 살생을 거들던 그가 축 늘어진 나를 막대기에 걸쳐 들고 닭장 쪽으로 총총 사라진다 ___ 2020.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