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소반다듬이
(...상략...)
시인과 시인 사이의 관계는 이토록 허황하고 눈물겨운 것 아닐까.
또 나는 젊은 시인은 老 詩人의 인격과 시적 성취를 흠모하고 노 시인은 젊은 시인의 방황과 고뇌를 보살펴주는 '시인과 시인'의 아름다운 관계를 알고 있다. 바로 대전에 사는 임강빈 선생과 황희순 시인이다. 그들은 '살아있는 시인의 사회'를 아무도 모르게 이룩해 놓고 있다. 서로의 허허로움을 달래주는 시인의 마음은 깊은 詩心과 통한다.
오래 전 일이다. 나는 정말 첩첩산중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헤매는 중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잠잘 곳을 찾다 보니 선생님 댁 대문 앞에 내가 서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이사하시어 남의 집이 되어버린 ‘대전 서구 도마동 126-2’, 옆집 담 너머 지붕까지 덮은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가로등 불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조금 망설이다 초인종을 눌렀다. 놀라신 선생님과 사모님은 서재에 이불을 깔아주셨고, 한 세 시간쯤 자고 일어나 살그머니 나왔다. 나오는 길에 흐트러져 있는 현관 신발들을 정리하고 현관문이 열리지 않도록 벽돌로 눌러놓았다. 새벽 5시에 궁금하여 나오신 선생님은, 텅 빈 방과 가지런한 현관 신발들을 보고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 시간은 속으로 울었다고 하셨다. 이 말씀을 2년쯤 후에 하셨다. 선생님이 바라보시던 그날 그 하늘에 한밤중 나를 따라오던 빛바랜 달이 떠있지 않았을까.
__황희순, <첩첩산중에서 만난 길> 부분, 시와인식, 2007, 겨울
정말이지 나도 이 글을 읽고 '한 시간은 속으로 울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이의 시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나는 내가 아니다.
이들의 오묘한 관계 속에는 눈물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음의 글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나는 이런 시인들이 무조건 좋다.
왜 좋으냐고? 그건 내 맘이다.
꼭 12년 전 일이다. 한 출판사에서 편집일을 맡아 하고 있을 때였다. 임강빈 선생님께서 오셨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선생님이 임의롭지 않았다. 팩스번호를 적어주시며 잡지사에 시를 한편 보내달라고 하셨다. 팩스를 보내고 종이를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놀란 표정으로 보내랬더니 왜 도로 주느냐 하셨다. 선생님보다 내가 더 놀랐다. 그 당시 교장이셨으므로 팩스가 어떻게 오가는지는 아실 텐데, 그럼 이 종이가 기계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 전달되리라 생각하셨단 말인가. 하긴 나도 문명의 귀신들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사는 터라 그냥 웃음보가 터졌을 뿐, 달리 설명을 해드리지 못했다.
__황희순, 임강빈 시집 <집 한 채>(황금알, 2007) 뒷글
____오탁번 시인의 저서 <헛똑똑이의 詩 읽기> p.296~298.
___오탁번 시인 : 충북 제천과 강원도 원주에서 나고 자람
시집 <벙어리장갑> <손님> 등
소설집 <저녁연기> <겨울의 꿈은 날 줄 모른다> 등
'나의 詩 비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집 『수혈놀이』 표지 글/오탁번 (0) | 2018.11.27 |
---|---|
‘사람노릇’을 그만둔 자리에서 피어나는 詩__시집 『수혈놀이』 해설/오홍진 (0) | 2018.11.27 |
별이 별똥이 되기까지 (0) | 2016.05.02 |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부위별로 팔아요> (0) | 2015.12.22 |
<해설> 시집 <미끼>__아무것도 아닌, ‘나’를 위한 悲歌/엄경희(문학평론가) (0) | 2015.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