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금지 변종태 봄과 여름 사이 하얗게 그려진 횡단보도 중간중간 씨앗이었을, 새싹이었을, 꽃잎이었을, 무늬가 새겨져 있다. 스키드마크가 그려진 지점의 끝에 떨어진 꽃봉오리 아직 피지 않은 계절이 뒹굴고 있다. 중학교 일학년이라던 경아, 봉오리처럼 입을 다문 채 횡단보도에 떨어진, 아니, 상상하지 말자. 봄에 피어나 여름을 건너 가을이면 튼실한 씨방에 열매를 맺을 꽃이라 생각하자. 횡단보도에서, 아니 꽃샘바람에 봉오리째 떨어졌다는 상상은 하지 말자, 이건 아니다, 아니다, 상상하지 말자. 시(詩)에서라고 어린 목숨 죽이는, 죽는 상상 비현실적이라는 말은 너무나 현실적이니까 떨어진 봉오리 꽃잎일 뿐이라고 상상이라고, 상상일 뿐이라고 부정해 봐도 아직 피지 않은 채 떨어진 저 순정한 봉오리. 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