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이 정리한 글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시詩는 인생人生이다”
―동문 황희순 시인을 만나던 날의 스케치
“시는 인생이다.”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시인 황희순. 분홍빛 소녀 시절부터 시를 품어온 그녀가 우연한 계기로 시를 만나 시인이 되기까지, 또 시인이 되어 여기에 이르기까지 문학에 대한 열정은 가슴 뭉클하다. 어쩌면 그녀에게 문학, 그리고 시는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설레는 마음으로 황희순 시인을 만나던 날은 며칠간 따뜻했던 날씨가 사라지고 유난히 바람이 세게 불었다. 행여나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걸음을 서두르던 우리를 먼저 발견한 황희순 시인이 길 건너편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연두색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고, 추운 날씨 탓인지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너무나 평범한 모습에 우리는 인사도 잊은 채 머뭇거렸다. 어설픈 인터뷰도 흔쾌히 허락하고, 게다가 점심까지 사준다고 하여 어색하기만한 우리 9명을 너무나 반갑게, 그리고 정겹게 약속 장소로 안내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마치 엄마 같은 푸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약속 장소는 비래동에 위치한 어느 칼국수집. 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그곳에 황희순 시인을 포함한 우리 10명도 함께 자리를 해서인지 식당이 꽤 북적거렸다. 한적한 찻집 같은 분위기 속에서의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지나 했었는데 의외로 편안한 분위기의 식당에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시인과의 첫 만남에 한껏 긴장해 있었던 우리들은 오히려 긴장을 풀고 더 편안한 만남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 황희순 시인은 단지 문학에 대한 열정만으로 가득 찬 우리 냇글인들에게 진정한 문학, 그리고 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성모여고 3학년 황희순>황희순 시인은 우리에게 시인이기 이전에 성모여고 3회 졸업생인 대선배님이었다. 자신을 인터뷰하겠다고 온 까마득한 후배들의 얼굴을 한번씩 쳐다본 후, 정말 끝까지 문학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 물음에 철부지 소녀들은 아무런 대답도 못한 채 그저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고, 황희순 시인은 그런 우리의 모습에 약간 실망한 기색을 비추었지만, 그래도 문학을 하는 작은 문학인들에게 들려주는 문학 이야기는 소홀하지 않았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 같은 성모여고를 다녀서인지 정겨운 얘기가 많이 오갔다. 선생님들 중엔 아는 선생님이 한두 분 계셨지만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30년이 넘는 시간은 금방 무색해졌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테이블을 옮겨 본격적으로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각자 가져 온 자신의 시를 황희순 시인에게 보여주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마치 어린 망아지 같은 글을 다른 사람, 게다가 시인에게 보여주는 일은 부끄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없이 부족하기만 한 글을 황희순 시인은 진지하게 한편씩 읽기 시작했다. 시를 보자마자 그녀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검은 펜은 분주한 움직임을 멈출 줄을 몰랐다.
시를 한번씩 읽고 난 다음 시인은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밤을 새워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서 “나는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하루 종일 책을 보기도 하고 국어사전을 뒤진다.”고 했다. 이어 시를 쓸 때엔 욕심을 버리라고 충고했다. 시는 설명을 하거나 낡은 서정은 시를 재미없게 만든다고 했다. 또 한편의 시에 같은 시어를 반복해서 쓰지 말라고 덧붙였다. 또 중요한 건 행을 나누는 것인데 아무렇게나 기분 내키는 대로 행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간혹 어른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시는 장식품이 아니니 자신을 잘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냇글인들의 시에도 그런 모습이 보였는지 ‘기교’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다. 처음부터 기교를 부리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시적 허용을 이용하여 기교를 부리지 말고, 되도록 쉬운 말로 표기법이나 문법에 맞게 시를 쓰라고 했다. “글은 혼자 열심히 쓰고,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 배운다고 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말로 우리 냇글인들이 게을리 하지 않고 글을 계속 쓸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황희순 시인은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징’이라고 했다. 상징을 알면 시를 쓸 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를 읽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하며, 상징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상징을 알면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진다면서 직접 상징을 체험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버스 정류장에서, 뚱뚱한 여자가 자신의 덩치엔 맞지 않는 고무신 같은 작은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작은 신발을 신고 있는 그 여자의 넘칠 듯한 발에서 상징을 보게 된 것이다. 시인은, 신발이라는 작은 그릇에 버거운 삶을 담고 있는 그 여자의 모습이 가슴 찡하게 와 닿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여자의 아슬아슬 흘러넘칠 것 같던 발을 6개월여 아프게 가슴에 담아두었는데 어느 날 그 아픔이 <버려진 신발을 보면 뒤집어보고 싶다>라는 시로 빚어졌다고 했다.
그녀는 그것이 상징이라고 했다. 덩치 큰 여자의 작은 신발 넘칠 듯한 발이 그녀의 삶을 대변하는 상징물이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단시간에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웠지만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갸우뚱한 우리의 표정을 바라보며 황희순 시인은 시는 무조건 상징이니, 상징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결코 게을리 해선 안 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것이 아직도 콤플렉스로 작용한다는 황희순 시인은 자신이 문학 활동을 하면서 영향을 받은 말이나 열심히 활동하는 시인들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새파란 9명의 소녀들은 재미난 옛이야기를 듣듯 시인의 말에 귀 기울이며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시인은 공중에 안테나를 하나 더 걸고 산다고 했다. 이렇듯 시인은 세상을 좀더 예민하게 바라본다는 것이다. 사소한 것 하나도 예사롭게 보지 않기 때문에 시인의 삶은 윤택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고통스럽다고 했다. 황희순 시인의 말에 냇글 동인 하나가 시가 너무 어렵다는 푸념을 늘어놓자 웃음을 보인 그녀는 이어 박재삼 시인 생전에 통화를 한번 한 적이 있는데 “시는 해도 해도 보이지 않는 끝이 없는 길이다.”라고 말씀하셨단다. 그러니 시는 무조건 어려운 거라고, 어려우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고, 쉽게 휘어잡을 수 있는 거였다면 시는 벌써 사라졌을 거라고 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 가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아쉬움이 묻어나는 만남을 뒤로한 채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새삼 글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불어넣어 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평이한 한주의 별다를 것 없는 오후가 조금은 다른 색깔로 물들어갔다. 작은 문학인들은 보이지 않는 소중한 선물을 가슴에 안고,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벅차오르는 첫발을 내디뎠다. 황희순 시인과의 짧은 만남은 철부지 글쟁이들에게 또 다른 시작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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