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밥, 말씀/황구하

섬지기__황희순 2011. 3. 6. 17:02

황구하

 

밥, 말씀 외 1편

 

 

 

마루에 앉아 밥을 먹는데

그가 대문 앞에 쭈빗쭈빗 서 있었다

엄마는 얼른 부엌으로 달려가

밥 한 덩이 퍼 담은 바가지에 서너 찬을 얹어

아래채 마루에 놓아주었다

그는 말없이 허리를 조아리더니

마루에 오르지도 않고

뜰팡에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었다

자꾸 고갤 돌리는 어린 나에게

엄마는 눈을 꿈적꿈적하였다

어느 사이 그는 보이지 않고

덩그러니 마루에 혼자 남겨진 바가지

들고 오며 보았다, 바가지 한쪽

잘 모두어 놓은 밥 한 숟갈

 

 

그가 남기고 간, 한 말씀

 

 

 

 

벚꽃 진다

 

 

저 검은 몸속 어디

 

하늘로 가는 길 은밀히 뚫어 놓았나

 

여의주 문 물고기 한 마리

 

지금 막 헤엄쳐 나간 게 분명하다

 

시리디시린 하얀 비늘들

 

저리 환히 쏟아지는 걸 보면

 

_____황구하 시집 <물에 뜬 달>에서

 

*****황구하 시인 : 충남 금산 출생/2004년 <자유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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