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쓰기
봄이면 나는 개가 된다
섬지기__황희순
2006. 5. 22. 12:24
봄이면 나는 개가 된다
―하동 돌고지山房 추억.1
황희순
기관지암이 깊은 장순아는 요양 중이었고 나는 아이를 잃고 도망치듯 그곳에 숨어들었다. 야수 같은 산방 주인은 산으로 들로 다 죽어가는 우릴 끌고 다녔다. 봄비 내리는 날 소금 구울 대나무를 베러 갔다. 큰 나무를 베면 밑동에 맑은 액이 고여 있었다. 산방 주인은 만병통치약이라면서 먹으라 했다. 가느다란 대나무 가지를 꺾어 빨대를 만들었다. 질척거리는 풀섶에 머리를 맞대고 엎드려 그것을 빨아먹다 장순아와 나는 개가 되었다. 그녀가 먼저 우-우- 짖었다. 나도 따라 짖었다. 산방 주인은 두 마리 개를 질질 끌고 산을 내려왔다. 죽염가마에 장작불을 지피며 우린 밤마다 우-우- 짖어댔다. 소쩍새도 함께 울었다. 고요하던 산방이 개판이 되었다. 늦봄, 한 마리는 병이 깊어져 저승으로 가고 한 마리는 죽염을 한보따리 안고 산을 내려왔다. 주전부리하듯 죽염을 집어먹으며 오늘도 짖는다. 우-우-, 봄이면 나는 개가 된다.
--<애지, 2005,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