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박상륭 소설집 <평심> 중 "로이가 산 한 삶"에서

섬지기__황희순 2019. 5. 27. 12:39

신은, 유토피아나, 위대한 사회를 살기에 걸맞게 사람을 지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끝없이 투쟁하도록 지은 것일 것이라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사람을 그렇게 설계設計하기 위해, 신은 뭘 끙끙대고 고심했어야 할 필요도 없었음이 분명한데, 그 사람의 코에다 '숨'을, 또는 '뜻'을 불어넣고 있었을 때, 그 '뜻'을 '욕망'의 모양으로 슬쩍 바꿔놓기만 했으면 되었을 것이었다.

(사람들로부터, 밑에 구멍 뚫린, 저 '욕망'의 주머니를 뽑아내보라. 그러면 유토피아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알게 될 것을, ...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인세人世의 종말이기도 할라.)ㅡ( p.15)

 

고해苦海의 한 여울만큼씩, 프라브리티를 극복하게 될 때마다, 산은, 제 스스로 불을 일궈, 묵은 업業의 껍질을 태우고, 그 재 속에서 새로이 날개를 돋워내던 것을, 그렇게 산은, 제 업을 스스로 태운 재 속에서 날아오르는 새이던 것을, 그러니 도류는 산山 돼 오게. 와서, 나를 만나려 해도 못 만나겠거든, 도류가 어제 저녁 꿨던 꿈 하나가, 희게 깨어버렸는 것이라고, 그래서 꿈자리가 하나쯤 더 가벼워진 것이라고, 그렇게 알면 되고, 그렇지 못해, 다시 만나게 된다 해도, 반가워싸서, 뭐 꼭히 안 체할 일도 없겠지맹. 누구는 누가 아니던가 우리?ㅡ(p.32)

 

ㅡ박상륭 소설《평심》 中

<로이가 산 한 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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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브리티pravritti = 진행, 감춰진 것( 나타나지 않은 것)을 밝혀내는 과정, 진화, 동(動), 위(爲) 등의 의미.

 

니브리티 = 프라브리티에 역한다고 하여 역류, 퇴행 등의 의미를 말하나 또다른 의미로는 정지(靜止), 천공(天空)과 같은 절대적인 정지의 개념도 있다.

 

'프라브리티'가 일상사를 '체'로 삼은 '용'의 개념이라면, '니브리티'는 '니르바나 또는 천국상태'를 '용'으로 삼은 '체'로 이해할 수 있겠다.

('체'는 사물의 본체, 근본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용'은 사물의 작용 또는 현상, 파생적인 것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