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외 1편/임강빈
봄비
임강빈
봄비가 내려서
무량한 시간을
내게 조금 주어서
와르르 무너지는
내 하루의 공사(工事)
비로소 그 소리가
손에 잡힌다.
봄비는 우선은
갈한 나뭇가지에서
지붕에서 놀고
마당에서 놀고
차츰 내 척추(脊椎)
한가운데로 내린다.
오늘 봄비가 내려서
환히 모두가 흔들리고
밤사이 자라난
내 까칠한 수염에
조심조심
봄비가
비껴서 간다.
*****************************************
꽃병
임강빈
허리 긴
꽃이 없는 꽃병을
신부(新婦)는
왜 가슴에 안고 있을까.
비어있는 그 안에서
끓어오르는 욕망(欲望)은
손에 쥐어도
잡히지 않는
햇살 같은 것일까.
꽃이 떠나는 시간에서
익힌 몸짓.
꽃병을 가슴에 안고
아직은
떨리는 손끝.
한번은 꽃이고 싶을 때
그만큼
신부(新婦)는
왜 얼굴을 가리고 있을까.
*** 임강빈 시집 <당신의 손>(1969. 현대문학사)에서
*** 임강빈 시인
_1931년 공주 출생
_1956년 ≪현대문학≫ 추천 완료
_2016년 7월 16일 영면
시집
『당신의 손』(1969)
『冬木』(1973)
『매듭을 풀며』(1979)
『등나무 아래에서』(1985)
『조금은 쓸쓸하고 싶다』(1989)
『버리는 날의 반복』(1993)
『버들강아지』(1997)
『비 오는 날의 향기』((2000)
『쉽게 詩가 쓰여진 날은 不安하다』(2002)
『한 다리로 서 있는 새』(2004)
『집 한 채』(2007)
『이삭줍기』(2010)
『바람, 만지작거리다』(2016)
시선집
『초록빛에 기대어』(1995)
『속續 초록빛에 기대어)(2015)
수상
_충청남도문화상 요산문학상 상화시인상
_대전시인협회상 정훈문학상
2003. 08. 09. 양양 바닷가에서__황희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