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봄비 외 1편/임강빈

섬지기__황희순 2019. 2. 7. 15:39

봄비


임강빈



봄비가 내려서

무량한 시간을

내게 조금 주어서

와르르 무너지는

내 하루의 공사(工事)

비로소 그 소리가

손에 잡힌다.


봄비는 우선은

갈한 나뭇가지에서

지붕에서 놀고


마당에서 놀고

차츰 내 척추(脊椎)

한가운데로 내린다.


오늘 봄비가 내려서

환히 모두가 흔들리고

밤사이 자라난

내 까칠한 수염에

조심조심

봄비가

비껴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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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병


임강빈



허리 긴

꽃이 없는 꽃병을

신부(新婦)는

왜 가슴에 안고 있을까.


비어있는 그 안에서

끓어오르는 욕망(欲望)은

손에 쥐어도

잡히지 않는

햇살 같은 것일까.


꽃이 떠나는 시간에서

익힌 몸짓.

꽃병을 가슴에 안고

아직은

떨리는 손끝.


한번은 꽃이고 싶을 때

그만큼

신부(新婦)는

왜 얼굴을 가리고 있을까.


*** 임강빈 시집 <당신의 손>(1969. 현대문학사)에서

*** 임강빈 시인 

_1931년 공주 출생

_1956년 ≪현대문학≫ 추천 완료

_2016년 7월 16일 영면

시집

『당신의 손』(1969)

『冬木』(1973)

『매듭을 풀며』(1979)

『등나무 아래에서』(1985)

『조금은 쓸쓸하고 싶다』(1989)

『버리는 날의 반복』(1993)

『버들강아지』(1997)

『비 오는 날의 향기』((2000)

『쉽게 詩가 쓰여진 날은 不安하다』(2002)

『한 다리로 서 있는 새』(2004)

『집 한 채』(2007)

『이삭줍기』(2010)

『바람, 만지작거리다』(2016)

시선집

『초록빛에 기대어』(1995)

『속 초록빛에 기대어)(2015)

수상

_충청남도문화상 요산문학상 상화시인상

_대전시인협회상 정훈문학상



2003. 08. 09. 양양 바닷가에서__황희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