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임강빈 시집 <당신의 손>(1969, 현대문학사) '서문'/박두진

섬지기__황희순 2019. 2. 7. 15:28

  ◆서(序)


  박두진(朴斗鎭)



  오늘의 우리 시(詩)가 지향하는 길은 결코 단순하거나 순탄한 것만이 아니다.

  인간(人間)을, 또는 자연(自然)이나 인생(人生)을, 그리고 현실(現實)이나 어떤 거대(巨大)한 세계상(世界像) 같은 것을 깊고 넓은 이념(理念)의 기반 위에서 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은 먼저 현대(現代)의 서정시(抒情詩)가 보다 더 서정(抒情)의 본질(本質)에 투철하려 할수록 안팎으로 부딪치는 숙명적(宿命的)인 시련(試鍊)이며 앞으로의 인간(人間)과 예술(藝術)은 보다 더 포괄적(包括的)이고 종합적(綜合的)인 우주관(宇宙觀)에 의해서 불가피적으로 그 존재(存在)의 이유(理由)와 부담해야 할 기능(機能) 같은 것을 저울질해야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詩)가 오늘 어디만큼, 또 어떠한 정도로 이러한 객관적(客觀的) 요청(要請)과 그 내적(內的) 필연성(必然性)에 부응(副應)하며 있는지 간단하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현대(現代)의 서정시(抒情詩)는 인간성(人間性)과 서정성(抒情性) 과 예술성(藝術性)으로 이어지는 한편의 지향(指向)과, 현실(現實)과 세계(世界)와 사회(社會)와 역사(歷史)에로 이어지는 이념(理念)과 사상성(思想性)을 지향(指向)하는 또 한편의 갈래로 나뉘어지는 것을 부인(否認)할 수 없을 것이며, 이 평행적(平行的)인 두 길을 일원적(一元的)으로 융합(融合) 통일(統一)하는 또 하나의 지향(指向)을 이른바 높고 넓은 의미(意味)의 생활시(生活詩) 같은 것으로 포괄(包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임강빈(任剛彬) 씨의 시(詩)의 성격(性格)과 지향(指向)을 나는 위의 두 거대(巨大)한 지향(指向)을 이상적(理想的)으로 종합 융화(綜合融化)하려는 그 생활시(生活詩)의 세계(世界)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임 시인(任詩人)의 시(詩)는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요소(要素), 인간성(人間性)의 기미(機微)와 서정(抒情)을 생활(生活)과 직결되어야 할 것으로 파악하는 아주 조촐하고 가라앉은 의욕(意欲)을 연소(燃燒)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폭(幅)이 좁으나 질(質)이 섬세하고, 날카로우나 자극적이 아니며, 인생(人生)과 사물(事物)을 관조(觀照)하는 눈이 원숙(圓熟)과 품도(品度)를 더해가며 있다. 이러한 시적(詩的) 기질(氣質)은 오랜 우리의 전통적(傳統的) 시정(詩情)에도 그 맥락(脈絡)을 대는 것이며, 앞으로 우리 시(詩)가 서정(抒情)의 바탕을 이끌고 전진(前進)하려 할 때 대단히 귀중한 현대시적(現代詩的)인 과제(課題)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임강빈(任剛彬) 시인(詩人)의 첫 시집(詩集) ?당신의 손?은 우리 시(詩)의 앞날을 쌓아올리는 데 바쳐지는 하나의 잘 다듬어진 초석(礎石), 자칫 어두워지려는 작업장(作業場)에 켜놓은 한 개의 밝은 등촉(燈燭)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1969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