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이명(耳鳴).1 외 1편/정바름
섬지기__황희순
2018. 11. 9. 22:04
이명(耳鳴).1
정바름
조그만 씨눈에서 저리 큰 꿈 키웠는가
저녁상 술안주로 올라온 왕새우가
소금구이로 장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동안
허공은 파도처럼 요동쳤으나
아무 진동을 느끼지 못했다
바다를 가르던 그의 꿈을 한입에 털어 넣고
우리는 기껏
자연산과 양식 새우의 격조를 논하여
서슴없이 모가지를 비틀고 껍질을 벗겨냈다
그의 이력을 송두리째 삼킨 날
그는 내 꿈길을 휘저었다
푸릇하던 감각의 가죽이 벗겨지고
귓속에선 바닷물이 출렁거렸다
살았을 적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죽은 왕새우의 울음소리가
우웅 우우웅 귓전을 달구어
소금기 독한 망망대해에서 평형감각을 잃은 채
꿈,
표류하는 거였다
이명(耳鳴).2
정바름
음원(音源)을 알 수 없는 소리가
밤 깊도록 울어댔다
평형을 잃은 몸은 사방
불빛 속으로 흩어졌다
어른들은 귓속에 귀뚜라미가 산다거나
낡을 만큼 낡은 세월이 여기저기
고장을 일으킨 거라 말하지만
이승에 오기 전 태초의 고향에서 들었던
아득한 소리의 기억이
불현듯 되살아난 건지도 모른다
빛과 어둠이 나뉘기 전 창세(創世)의 거리에서
소용둘이치던 혼돈의 기억 때문에
나도 몰래 진동하는지도 모른다
떠나온 기억도 없이
어디론가 돌아갈 것을 아는 영혼의
흐느끼는 가을밤,
깊다
___정바름 시집 <빛비>에서
___정바름 시인 : 1964년 충북 영동 출생/1993년 <한국시> 등단
시집 <사랑은 어둠보다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