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엄마를 베꼈다/김도연

섬지기__황희순 2017. 6. 10. 10:33



엄마를 베꼈다


김도연




__언젠간 세월이 알게 해줄 것이여

씻지도 않은 씀바귀 뿌리를 잘근잘근 씹으며

엄니는 알듯 모를 듯 혀를 찼다

그때마다 내 목구멍에도 씀바귀가 뿌리를 내렸지만

파란 대문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나는

씀바귀의 쓴맛을 알지 못했다


그 후

밤마다 꿈속까지 뻗어 내려온 씀바귀 뿌리가

나를 파란 대문으로 인도했지만

세월의 속살은 아직 부드러웠고

파란 대문은 이미

닿을 수 없는 고향집이 되어 있었다


별을 따고 싶었지만

도시의 별은 너무 높이 떠 있었다

파랑새는 차츰 말을 잃어갔으며

눈은 점점 깊어만 갔다

결국 나는 내 슬픈 눈망울에 별을 그려준다는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


세월은저희끼리만행복했다

남자의언약은언제나공수표였다


별을 보기 위해선 눈을 감아야 했다

별보다 더 높은 하늘에 파란 대문이 걸려 있었다

세월이 알게 해준다던 엄니는 그 세월에 먹혀

끝내 파란 대문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도깨비바늘만 무더기로 피어

함부로 고향집을 넘보고 있었다



***김도연 시집 <엄마를 베꼈다>에서

***김도연 시인 : 충남 연기 출생/2012년 <시를사랑하는사람들>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