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어떤 항해/김선근
섬지기__황희순
2017. 1. 18. 10:54
어떤 항해
김선근
인도(人道)에 걸터앉아 휘청이는 사내
어깨가 씰룩거린다
술 한 잔 늘어날 때마다
절망이 성큼성큼 다가섰다고
주저리주저리 육두문자를 섞어 바닥에 흘린다
무릎 사이로 깊이 가라앉은 머리
자위하듯 몸를 웅크린다
잊었던 꿈들이 저울질해댈 때
절망의 접착력은 더 강해지는 법
발버둥 치고 목숨을 걸어도
무엇 하나 얻지 못하고
차마 그곳으로 향하지 못할 때 있다
사내의 접혔던 몸이 피어오른다
무릎 사이 오래 품었던
천 근 같은 닻을 걷어 올린다
초저녁 바람이 심상찮다
깃발처럼 흔들리는 돛대
사내의 항해가 위태롭다
<시작노트>
탁한 물속 물고기들이 등이 휘고 비늘이 갈라져도 멈추지 않고 헤엄치는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다. 바닥에 사는 물고기는 힘차고 날쌜수록 흙탕물만 일으킨다. 온전한 자신이 될 수 없는 세상이다.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자 맑았던 호수가 탁해진다. 바닥의 물고기들은 호수에서 추방되고 이유 없는 방황이 시작된다. 익숙하다는 것은 의외로 편안하고 낯선 거리에 널브러진 젊음은 침묵에 익숙하다. 그들이 길을 걸으면 먼지가 난다. 그들을 딛고 선 평온이 맑게 포장될 때 존재의 근원에서 그들은 방황한다. 패기를 갖고 살기엔 탁류가 거세다.
___,<다층, 2016. 겨울/'젊은시인7인선'에서
** 김선근 시인 : 2007년 <현대시선>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