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박상륭 소설 <죽음의 한 연구> 에서

섬지기__황희순 2016. 8. 18. 11:48

소설 "죽음의 한 연구", 10여 년 전 읽고 또 다시 정독,

찌는 2016년 8월을 마른 유리에서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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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산다는 일이 말입지, 누군가가 배후에서 철삿줄을 놀리고 있는 그런 말입지, 그 철삿줄을 끊고 말입지, 그 꼭두각시가 무대 아래로 내려서려고 한다면입지, 그건 꼭두각시의 죽음과 연결되는 것입지. 꼭두각시의 자유와 초월은 말입지, 첫삿줄을 계속 붙들려매어져 있을 때라야만 말입지, 가능한 것일지도 모릅지. 거역이나 반항도 그렇습지. 철삿줄을 쥐고 있는 누군가가 말입지, 왼손을 쳐들라고 하는데입지, 꼭두각시 당자가 왼발을 쳐들 수 있는, 그런 말입지, 거역과 자유도 말입지, 그 철삿줄과의 연결 아래서 가능된다는 말입습지." (p. 331)



그렇더라도 내가 이만큼 살아오며, 뭔가를 생각해왔고, 또 무엇보다도 '살아 왔다는 것'을, 한 울음에 담아 끼욱거리기라도 해보기는 해보아야 되는 것이다. 그러는 중에 날개가 지쳐, 내려앉는 곳이 불구덩이라도 하더라도, 어쨌든 한 번은 산 목청으로 울었다는 것을, 자신의 귀에라도 들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끼욱, 다만 한 번 끼욱, 끼욱. (p.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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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천하에 불순한 건 개놈뿐일 것이다. 그것들은, 제놈이 누운 똥까지도 삼키려 들며, 제놈의 오줌 냄새를 물 좋은 곳 인삼주쯤으로나 아는 것이다. 그런 뒤, 그 코를 지혜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란 개 같은 것이다. 그런 지혜란, 뼛속으로 파고 다니는 두더지 같은 것이어서, 모든 열매 맺는 것의 뿌리를 파헤쳐, 그 뿌리를 죽이려 들며, 습기가 있어야 할 곳을 푸르스러지게 한다. 그런 지혜란 두더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메마름에의 광병적 희원이라고 부를 것인 것이다. 개는 두더지라. 두더지는 개러라. (p.359)

 

혼과 육의 이 결합은, 서로 조화를 잃기 시작할 때, 서로를 구속하고 억류하는 족쇄로밖에는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에게 함정이며 덫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아주 갓난시절을 제외하고, 이제 혼과 육이 발육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일종의 부조화의 조화라고까지 이해해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육이 혼에 승할 때, 그것은 소나 개 같은 존재로 변하고, 혼이 육 속에서 범람할 때, 머리칼 한 가닥 한 가닥이 모두 독사인, 그런 무녀 같은 것으로 변해질지도 모른다. 상쇄도는 상합이 대개 이뤄졌다고 한달지라도 그 의미는 어쩌면, 아흔아홉 개의 눈은 자고, 한 개의 눈만 떠서 밤을 지키는 삶일지도 모른다.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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