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아름다운 환멸/김효선

섬지기__황희순 2016. 7. 13. 15:52



아름다운 환멸


김효선



꿈을 꾸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꾸다 만 꿈들은 어떤 몸을 빌려 환생하나

네가 흘린 침에 온몸이

녹아내린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을 버릴 수 없었던 거대한 코모도

독한 사랑의 중심을 밀어내는

저 벨 소리


날이 흐린 것도 아닌데 사방이 어둡다

공격보다 방어를 먼저 배운 쥐며느리가

심장을 둥글게 말고 있다

나는 아직 양수 속에 웅크린 채

손가락을 빨고 있다

심장 가까운 곳에 모여든 기억

치자꽃은 여전히 치자꽃 흰 세월을 떠나보내고


나의 왼쪽 얼굴만 기억하는 당신

나머지 반쪽을 떠나보낸 먹구름

게일라성 폭우가 쏟아진다는 소식이다


'나'라는 문장의 오류는 여전히

'나'라는 환멸에서 시작되고 있다



__김효선 시집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에서


**김효선 시인

   _1972년 제주 출생

   _2004년 <리토피아> 등단

   _시집 <서른다섯 개의 삐걱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