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쓰기

수혈놀이

섬지기__황희순 2015. 12. 10. 19:17

 

 

   수혈놀이

 

     황희순

 

 

 

   

  처음부터 우리 사이엔 날선 칼이 놓여있었지 서로를 넘나드는 발자국에 피가 묻어났지 나란히 누워 마주보면 이빨 사이로도 피가 스몄지 그 피 서로 핥아주며 낄낄거렸지 너의 외로움과 나의 즐거움이 부딪치면 불똥이 튀었지 손만 잡아도 터지는 상처는 꽃을 피웠지 둘이 머문 들판은 언제나 축제장이었지 불꽃 낭자한 축제에 정신이 팔려 피를 몽땅 낭비해 버렸지 우린 껍질만 남아 바람에 밀려다니다 사라졌지 살고 살고 또 살아도 어김없이 혼자라도 다시 살고 싶어지는 12월, 오래 숨겨두었던 마지막 남은 피를 꺼냈지 새싹이 봄에만 돋는 건 아니지

 

___<작가회의> 2015, 상반기